김동원 국제부 차장
당시 파워 브랜드의 가장 앞자리를 코닥필름과 코카콜라가 차지했던 기억이 새롭다. 아프리카 상공을 날던 비행기에서 떨어진 콜라병을 요리조리 만지며 신기해하던 영화 ‘부시맨’이 인기를 끌던 시절이었다.
코닥은 1980년대만 해도 세계 필름시장의 70% 정도를 석권할 정도로 적수가 없었다. 131년의 역사를 지닌 회사가 이제 역사 속으로 사라질 위기에 몰렸다.
전설적인 코닥을 쇠락의 길로 이끈 건 디지털카메라였다. 디카를 처음 개발한 곳도 바로 코닥이라는 사실은 참 아이러니하다.
코닥은 1975년 디카를 처음 개발했지만 오히려 이 기술을 상용화한 업체들에 시장 주도권을 빼앗기는 수모를 겪었다. 필름이라는 ‘기득권’에 집착해 ‘디지털’이라는 거역할 수 없는 시대 흐름을 따라가지 못했다.
#“혹시 워크맨을 써 보셨는지…. 워크맨을 사용해 봤다면 요즘 기준으로 그대는 신(新)세대가 아닌 쉰세대다.”
이런 우스개가 나올 정도로 카세트식 휴대용 음악재생기인 워크맨은 한 시대를 풍미했다. 기자의 학창 시절 영어 공부를 구실로 이름 그대로 ‘걸어 다니며’ 워크맨을 들었던 사람이 부지기수였다. 최근 한 조사에서 50년간 가장 위대한 발명품으로 애플의 아이폰에 이어 워크맨이 2위에 오를 정도다. 그런 원조 워크맨도 MP3플레이어라는 신물결의 격랑에 밀려나는 신세가 됐다. 얼마 전 워크맨이 시장에서 사실상 퇴출됐다는 소식은 그래서 남다르다.
갈라파고스는 남미대륙 에콰도르에서 서쪽으로 1000km 떨어진 작은 섬. 스페인어로 거북이라는 뜻이다. 오랜 세월 대륙과 격리된 탓에 독특한 모습으로 진화한 동식물이 많아 찰스 다윈의 진화론에 영감을 준 곳이다.
니혼게이자이 등 일본 언론은 “일본의 산업계는 자신들만의 세계에 빠져 있는 갈라파고스”라며 “미국산 TV처럼 일본산 휴대전화와 전자제품도 사라지는 날이 올지 모른다”고 경고했다. 내수시장 나눠 먹기에 매달린 채 기술적 고립을 자초한 일본 대기업이 갈라파고스와 닮았다는 지적이다.
비단 코닥과 워크맨만의 굴욕일까.
한국의 주력 산업도 예전 같지 않다. 우리 간판 기업들은 그동안 국제무대에서 ‘민첩한 2등 전략’으로 나름대로 성공을 거뒀다. 삼성, SK, 현대자동차, LG 등 대표 기업들이 상당 부분 이 전략을 구사한 측면이 있다. 최선두 기업을 추격하며 빠른 의사결정으로 제품 타이밍을 잘 맞추면 큰 위협 없이 목표가 이루어졌다.
요즘 우리 기업들의 홍보성 자료를 보면 최고, 최대, 최초라는 표현이 자주 나온다. 이를 보면 솔직히 우려를 떨치기 어려운 점도 있다.
혹시라도 단기전의 승리를 즐기며 안주하는 모습은 아닌지…. 안주하는 순간 추락의 급행열차를 타는 것은 한국도 예외가 아니기 때문이다. 갈라파고스 현상이 바다 건너 일만은 아니다.
김동원 국제부 차장 davis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