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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프리즘/권순활]‘살찐 좌파’ 기업 책임도 크다

입력 | 2011-10-12 20:00:00


권순활 논설위원

좌파는 우파보다 경제적으로 궁핍하다는 이미지를 풍긴다. 하지만 한국의 시민사회운동 분야는 사정이 딴판이다. 오히려 좌파 단체가 재정적으로 훨씬 풍족하다. 그들의 집회와 시위를 지켜보면 저런 대규모 행사에 들어갈 많은 돈이 어디에서 나올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한국의 좌파 세력에게 노무현 정권 5년은 ‘젖과 꿀이 흐르는 세월’이었다. 정치적 영향력이 커졌고 주머니 사정도 두둑해졌다. 정부중앙청사와 과천청사의 직업 관료로 구성된 ‘제1의 정부’와 좌파 단체 및 운동권 출신 청와대 참모로 구성된 ‘제2의 정부’가 존재한다는 말도 나왔다. 실질적 권력은 제2의 정부 사람들이 휘둘렀다.

대기업과좌파의‘부적절한 거래’

권력 주체로 떠오른 좌파 진영의 주요 자금줄은 국고 보조금과 기업 후원금, 강성 노조 회비였다. 이들은 ‘시민단체 육성’이란 명목으로 나랏돈에서 나간 보조금의 최대 수혜자였다. 그들이 입만 열면 비판했던 기업들, 특히 대기업도 ‘살찐 좌파’를 만들어낸 후원세력이었다. 막강한 영향력을 과시하던 참여연대와 밀접한 인적, 이념적 네트워크를 지닌 아름다운재단이 2000년 창립 이후 11년간 928억 원의 기부금을 거둬들였고, 이 가운데 대기업 후원금이 수백억 원이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기업들은 직접 기부 외에도 다양한 방식으로 좌파 진영의 환심을 사려 했다. 상당수 단체의 전현직 임원들이 사외이사로 영입돼 매월 수백만 원의 부수입을 올렸다. 이런 단체의 주요 인사를 특별관리 대상으로 지정해 경영자가 수시로 접대하는 기업도 많았다. 다양한 ‘수금 창구’를 통해 축적된 자금 중 상당액은 좌파 진영 내 재분배 과정을 거쳐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법치 질서를 흔드는 군자금으로 변모했다. 돈에 대한 감시와 감독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대한민국 체제의 최대 수혜자인 기업이 그들을 옥죄는 세상을 꿈꾸는 세력과의 부적절하고 불투명한 거래로 ‘봉 노릇’을 한 모순을 어떻게 봐야 할까. 기업인들은 “그때 시대상황으로선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말한다. 그런 측면을 부정하긴 어렵지만 냉정히 말해 변명에 불과하다. “협조하지 않으면 괴롭히겠다”는 조직폭력배에게 뒷돈을 대주는 대신 조용히 넘어가자는 식의 보신주의 냄새가 물씬 난다.

기업인들의 해명을 받아들이더라도 좌파 정권이 막을 내린 뒤 그들이 보인 비겁한 태도는 납득하기 어렵다. 춥고 배고픈 세월을 보내면서도 자유와 시장의 가치를 지키는 운동을 벌여온 인사들은 “기업들이 우파 시민단체 활동에 후원한 금액은 좌파를 지원한 돈의 수십분의 1도 안 될 것”이라며 “좌파 사람들에게는 벌벌 떨면서 상전 모시듯 하던 대기업이 우파 사람들은 거지 취급하는 사례도 많다”고 개탄한다. 이명박-한나라당 정권의 양대 주주인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부터 재야(在野) 보수 세력과 의식적으로 거리를 두려 했으니 눈치 빠른 경제인들이 그렇게 행동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을지 모른다.

지식인과 기업인 역할 중요하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때로 나타나는 과도한 탐욕이나 ‘시장 실패’는 경계하고 보완책을 마련해야 한다. 하지만 자유와 시장이라는 근본 가치까지 흔들리면 그 공동체는 몰락의 길로 접어든다. 앞으로 몇 년 동안 우리가 얼마나 중심을 잡고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한국의 국운(國運)은 결정적으로 갈릴 것이다.

미국의 조지프 쿠어스나 찰스 코크, 영국의 앤서니 피셔 같은 기업인들은 사재(私財)를 털어 자유주의 가치를 전파하는 운동에 힘을 보탰다. 첨예한 이념의 전장(戰場)에서 나라를 지키고 국운의 추락을 막으려면 지식인과 기업인의 역할이 중요하다. 경제인들이 가치의 무게를 소홀히 여긴다면 어쩔 수 없다. 그 대신 ‘살찐 좌파’가 다시 판을 치는 시절이 오면 거액의 기부금을 내고, 후원의 밤 행사에 불려가고, 사외이사로 모시던 몇 년 전 역사가 반복될 개연성이 매우 높다는 점은 알아두어야 할 것이다.

권순활 논설위원 shkw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