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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서울을 점거하라” 시위, 정치적 의도를 경계한다

입력 | 2011-10-13 03:00:00


미국의 ‘월가 점거(Occupy Wall Street)’ 시위가 전 세계로 확산되는 가운데 한국에서도 이를 모방한 시위가 열릴 모양이다. 15일 오후 2시 금융소비자협회 투기자본감시센터 금융소비자권리찾기연석회의 참여연대는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 앞에서, 빈곤사회연대는 서울역 광장에서 별도로 한국판 월가 점거 시위를 벌인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반대 범국민운동본부 등 30여 개 시민단체는 같은 날 오후 6시 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1%에 맞선 99%의 행동, 서울을 점거하라’라는 이름으로 시위를 벌이기로 했다.

꼼꼼히 들여다보면 빈곤사회연대나 한미 FTA 반대 범국민운동본부가 주최하는 모임은 말만 월가 점거 시위에 동참한다는 것이지 사실은 막바지에 도달한 한미 FTA 협정 발효 반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차라리 한미 FTA 반대 시위라는 깃발을 드는 편이 솔직할 듯하다. 시위 장소를 금융기관이 모여 있는 여의도가 아니라 서울역 광장과 서울광장으로 잡은 것을 보더라도 그 동기가 의심스럽다. 이번 시위의 정치적 의도를 경계할 필요가 있다.

미국 월가 점거 시위는 경제 호황기에는 거대한 이익을 가져가면서 위기가 생겼을 때는 구제금융을 통해 피해를 납세자들에게 전가하는 금융권에 대한 비판에서 시작됐다. 금융권에만 초점을 맞춘 것도 아니다. 경제 상황에 실망과 분노를 느끼는 사람들이 모여 온갖 문제를 토로하고 있는 것이 월가 시위다. 목표도 명확하지 않고 지도자도 없다는 것이 특징이지만 시위 참여자들의 자발성이 강하다. 한국처럼 시민단체가 조직적으로 참가자를 동원하는 주말 시위 위주의 모임은 진정한 월가 점거 시위라고 볼 수 없다. 이번 시위가 진정성을 인정받으려면 시민의 자발적인 참여를 유도할 수 있어야 한다.

세계가 2008년 리먼브러더스 붕괴 이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 지금의 자본주의는 개혁이 필요하다. 자본주의는 카를 마르크스의 예언처럼 자체 모순으로 붕괴하지 않고 몇 차례 위기를 겪으면서도 개혁을 통해 살아남았다. 세계 곳곳에서 청년 실업률이 치솟고 중산층은 무너지고 있다. 한국의 청년 실업자와 빈곤층도 좌절하고 있으며 사회가 공정하게 돌아가고 있지 않다는 인식도 높아지고 있다. 한국판 월가 점거 시위는 이런 문제를 함께 고민하는 계기가 돼야 한다. 일부 시민단체가 한미 FTA 반대를 핑계로 서울 중심가를 점거해 소란을 피운다면 서민경제를 더 어렵게 만들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