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자룡 국제부 차장
이번 슬로바키아의 행보를 계기로 유로 단일통화 체제가 회원국들에 ‘모럴 해저드’를 부추겼다는 사실이 새삼 지적되고 있다.
예를 들어 그리스는 1999년 1월 1일 처음 11개국으로 유로화가 출범할 당시 재정 불건전성 등을 이유로 탈락됐다. 그 뒤 2년 뒤인 2001년 그리스가 유로존에 가입하자 오트마어 이싱 전 ECB 총재는 “자격도 안 되는데 (다른 나라를) 속여서 가입했다”고 주장했다.
시사주간 타임은 최근 ‘유럽의 종말’이라는 특집 기사에서 “공동의 화폐를 사용하다 보니 일부 국가가 생산력과 경제력에 맞지 않은 화폐가치를 누려 ECB로부터 마구 돈을 빌려 쓸 수 있었다”며 “유럽이 카지노를 닮아갔다”고 비난했다.
유로화 출범 당시 유럽은 ‘유럽 합중국’의 첫 출발이라고 한껏 들떴다. 하지만 출범 12년을 맞아 경제의 규모와 실력이 서로 다른 국가를 무리하게 묶었던 부작용이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불거지고 있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현재가 암울하다 보니 과거 악몽까지 되새기는 지경이다. 지난달 워싱턴포스트는 ‘유로가 없으면 유럽은 다시 전쟁으로 돌아가는가?’라고 물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유로는 유럽에서 민족주의와 전쟁을 제거하는 마지막 조치처럼 묘사됐다”고 회고했다. 다시 말하면 유로가 붕괴하면 유럽 내에서 (무역이든 전쟁이든) 분쟁 요소들이 불거질 것을 우려한 것이다.
과연 유럽 통합이 현실을 도외시한 이상적 꿈이었는지, 통합은 고사하고 글로벌 경제위기의 진앙이 돼 지구촌을 흔들지, 아니면 비온 뒤에 단단해지는 유럽으로 거듭날지 세계는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지켜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