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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박상우의 그림 읽기]말의 풍경

입력 | 2011-10-15 02:00:00


표정들, 이형준. 그림 제공 포털아트

학창 시절, 제자들에게 꼬박꼬박 존댓말을 쓰는 국어선생님이 계셨습니다. 제자들이 불편하다고, 아무리 말을 편히 하시라고 해도 그 선생님은 말을 놓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에 대해 어느 날 선생님은 간단명료하게 설명하셨습니다. “모든 사람은 존대받고 공경받을 천부인권을 지니고 태어났으니 존댓말을 사용하는 건 지극히 당연한 일입니다. 내가 존댓말을 고수하는 건 그것을 좋아해서가 아니라 반말을 싫어하기 때문입니다. 반말은 인간에 대한 존중심과 절제력을 잃게 할 수 있는 무경계의 언어입니다.”

그날 선생님도 설명하셨지만 반말의 반대말은 존댓말이 아닙니다. 존댓말의 반대말은 낮춤말이고 반말의 반대말은 온말입니다. 반말의 ‘반’이 한자의 ‘반(半)’이므로 그것은 온전치 못한 말, 다시 말해 ‘반절말’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손아랫사람에게 하듯 낮추어 하는 말이나 친밀한 관계 혹은 애매한 관계에서 높임도 아니고 낮춤도 아닌 상태로 사용하는 말을 반말이라고 합니다. 예를 들어 ‘허리가 아파’라거나 ‘배가 고프네’처럼 어정쩡하게 사용하는 말, 그리고 ‘네가 뭘 알아?’라거나 ‘누가 물어봤어?’처럼 아랫사람을 대하듯 사용하는 게 반말입니다. 온말이란 당연히 상대방을 존중해서 적절하게 완성된 문장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반말지거리’는 반말을 함부로 지껄이는 걸 일컫는 말입니다. 그것보다 강도가 더 세지면 ‘막말’이 되고 그 정도를 넘어서면 폭언이 터지게 됩니다.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과 삿대질, 이마에 돋아나는 핏대가 절로 떠오르는 상황입니다. 세상은 스마트해지는데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불미스러운 풍경은 대부분 반말과 막말, 그리고 폭언으로 점철됩니다. 그런 상황이 군대나 국회 같은 특정한 집단에서만 생겨나는 것 같지만 실상 우리 사회에 만연한 반말과 막말과 폭언의 실상은 심각합니다. 부모와 자식, 스승과 제자 사이에도 패륜적이고 패악적인 폭언과 폭행이 오가는 세상입니다. 너무 자주, 너무 광범위하게 일상화되어서 우리 스스로 그것의 심각성을 자각하지 못할 뿐입니다.

국회의원이 탄 차가 과속으로 달리다 신호에 걸려 급제동하며 앞차를 들이받았습니다. 뒤차의 잘못임에도 불구하고 남성운전자가 차에서 내려 앞차의 젊은 여성운전자에게 다짜고짜 반말지거리와 삿대질을 해대며 이렇게 물었습니다. “야, 너 저 차에 누가 타고 계신 줄 알아?” 젊은 여성운전자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남성운전자를 올려다보자 그는 더욱 기세등등한 어조로 언성을 높였습니다. “저 차에 국회의원님이 타고 계셔. 알기나 해!” 그러자 젊은 여성운전자가 풋, 입바람을 내불고 나서 당찬 표정으로 남성운전자에게 되물었습니다. “그럼 넌 이 차에 타고 있는 내가 누군 줄 아니?” 그러자 잠시 움찔한 표정을 지으며 남성운전자가 되물었습니다. “니가 누군데?” 촌극의 대미를 장식한 여성운전자의 한마디가 걸작입니다. “나, 네티즌이야.” 그 한마디 말에 모든 문제가 깔끔하게 해결됐다는 말을 라디오방송의 사연으로 전해 들으며 쓴웃음을 지었던 적이 있습니다.

반말과 막말과 폭언이 없는 세상을 상상합니다. 모든 사람이 조용조용 온말을 주고받는 세상, 굳이 존대의 형식을 빌리지 않더라도 충만한 마음의 언어로 상대를 존중하는 세상은 물질을 넘어 정신적으로 풍요롭고 윤택할 것입니다.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라는 성경의 말씀을 상기하며 우리 입에서 나오는 말을 곰곰 되새겨봐야겠습니다.

박상우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