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찰측 형소법 시행령 초안 살펴보니…
○ “송치 전 기소·불기소, 경찰이 판단”
동아일보가 14일 입수한 경찰 측 시행령 초안은 ‘검사가 수사지휘를 할 때는 사건에 대한 법률 적용이나 조사 사항의 법적 판단에 대해 구체적으로 해야 하고 사법경찰관의 기소·불기소 등 송치의견에 대해서는 지휘할 수 없다’고 적시했다. 경찰청 관계자는 “6월 형사소송법 개정으로 경찰에 수사 개시·진행권이 부여됐기 때문에 수사 진행과정에서 생기는 구체적 사안에 대해서만 검사가 지휘를 해야 하고 피의자가 기소할 만큼 혐의가 뚜렷한지도 경찰이 독립적으로 판단하겠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검찰이 기존 방식대로 경찰 수사 전반을 지휘하며 ‘기소 또는 불기소 의견으로 사건을 넘기라’고 하면 따르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어 경찰은 검사가 수사지휘를 할 수 있는 경우를 △경찰이 수사 중인 사건에 관한 진정이나 이의제기가 검사에게 접수된 경우 △종결 사건을 다시 수사할 경우 △검사에게 체포영장이나 압수수색영장 등 허가서 신청을 한 때 등으로 한정했다. 경찰 관계자는 “그동안 검사의 수사지휘가 검찰청법상 명령·복종 규정과 맞물려 무제한적으로 행사돼 온 점을 개선하기 위해 구체적 기준을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 “검찰의 ‘제 식구 감싸기’ 견제하겠다”
또 경찰은 검찰이 동료 검사나 전관인사들의 비리를 덮는 데 수사지휘권을 남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수사대상자가 전현직 검사이거나 검찰청 소속 공무원일 경우 검사는 수사지휘를 할 수 없다’고 못 박았다. 반면에 법무부는 ‘공무원 범죄의 경우 사안의 심각성을 고려해 수사 초기부터 검사가 지휘하도록 한다’는 내용을 시행령 초안에 담아 향후 논의과정에서 격론이 벌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검사의 수사지휘에 이견이 있을 경우 고검에 서면으로 이의신청을 할 수 있다는 조항도 명문화됐다. 경찰 측 시행령 초안에 따르면 이의신청을 접수한 고검 검사장은 5일 이내에 해당 수사지휘의 적법성 여부를 판단해 결과를 통보해야 하며 이의신청이 인정될 경우 해당 검사는 수사지휘를 바꾸거나 철회해야 한다.
법무부가 10일 시행령 초안을 통해 경찰 내사의 범위를 탐문과 정보 수집으로 축소한 것을 의식한 듯 경찰은 그동안 관례상으로 통용돼왔던 내사의 범위를 분명히 했다. 경찰은 ‘수사지휘의 시기’에 관한 조항을 만들어 ‘검사는 사법경찰관이 범죄 혐의를 인식하고 범죄인지서를 작성하거나 시스템상 입건하여 수사를 개시한 이후에 수사지휘를 할 수 있다’고 명시했다. 기존 관행대로 피의자 입건 전 단계는 모두 내사에 해당돼 검사의 수사지휘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아울러 경찰은 법조계와 학계 인사가 참여하는 검경협의회를 구성해 수사지휘 문제로 두 기관이 충돌할 경우 중재를 맡기는 방안도 초안에 담았다.
이에 대해 검찰은 “법과 원칙에 따라 시행령을 만들겠다”며 즉각적인 대응을 자제했다. 그러나 경찰 측 시행령 초안이 외부에 알려져 두 기관이 감정싸움을 하는 것처럼 비치는 것에 대해선 유감스럽다는 반응을 보였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법무부가 시행령 초안을 국무총리실에 제출하면 검찰이 검토의견서를 낸 뒤 경찰 등과 협의해 안을 확정하기로 돼 있었다”며 “경찰이 스스로 시행령 초안까지 만들고 검찰 비리를 수사하는 기관으로 행세하려 하는 것은 신뢰를 저버린 행위”라고 지적했다.
최창봉 기자 ceric@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