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재난사고는 초기 대응이 중요하다. 그런데 이번 위기 해결 과정에서 유럽은 초기 대응에 너무 많은 시간을 소모했다. 유로화를 쓰는 17개국의 입장이 제각기 다르고 각국의 정치적 의사 결정 또한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나마 사태 수습을 위한 첫 단추를 이제 막 채웠다는 점이 다행스럽다. 유럽재정안정기금(EFSF)을 둘러싼 개략적 합의가 그것이다. 세계 증시는 이를 일단 환영하고 안도랠리를 보이고 있다. 이제 남은 과제는 무엇인가.
금융 위기의 수습은 통상 세 단계를 거친다. 부실 인식과 부실 처리, 그리고 마지막으로 경기 회복 단계다. 일이 더디면 부실 처리 비용도 비례해 증가한다. 신용등급 강등과 금리폭등, 이자가 또 이자비용을 부르는 상황, 외국인의 자금 이탈, 예금 인출, 금융시장 전체로의 부실 전염 등의 과정을 통해 비용이 당초 예상치를 크게 뛰어넘기 때문이다. 3년 전 미국도 헬리콥터로 돈을 뿌려가며 중앙은행이 부실채권을 사들이고, 한쪽에서는 은행을 구제하는 입체작전을 펼쳤다.
그런데 유럽은 빚쟁이 국가지원을 위한 재원 마련부터 만만치 않은 장벽에 부닥쳤다. 당초 아일랜드, 포르투갈 문제가 터졌을 때 일을 서둘렀다면 상황은 지금보다 훨씬 나아졌을 것이다. 지금부터는 시간과의 싸움이다. 성패의 관건은 각국이 손발을 얼마나 잘 맞춰 솜씨 있게 처리하느냐에 달려 있다. 행동은 없이 말만 장황하게 오간다면 감당할 비용은 눈덩이처럼 불어날 게 뻔하다. 유럽을 통해 세계 금융시장을 보는 관전 포인트는 바로 ‘행동의 속도’에 있다.
김한진 피데스 투자자문 부사장
김한진 피데스 투자자문 부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