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하생활자들 ★★★★☆
사회적 범죄에 병든 한국사회의 문제를 신화적 내러티브와 전통연희로 풀어낸 국립극단의 창작극 ‘지하생활자들’. 한국사회의 사회적 악을 대변하는 뱀비늘 사내 역의 조정근(왼쪽)과 그에게 희생됐음에도 그를 보편적 인간애로 품는 구원의 여인 역의 김지성. 국립극단 제공
뱀신랑설화는 그리스신화 속 프시케 이야기를 닮았다. 사람의 몸을 빌려 태어난 흉측한 뱀을 측은히 여겨 그와 결혼한 여인(프시케)은 첫날밤 그 뱀이 허물을 벗고 준수한 선비(에로스)로 변하는 것을 목격한다. 선비는 어떤 일이 있어도 자신의 허물을 태우지 말라는 약속을 받고 떠난다. 하지만 여인에게서 비밀을 알아낸 언니들은 질투심에 사로잡혀 뱀허물을 태워 버리고, 선비는 돌아오지 않는다. 여인은 간난신고 끝에 지하세계서 새 여자와 살림을 차린 남편을 찾아내 기억을 되살리고 지상으로 데려와 행복을 되찾는다.
연극 속 여인(김지성)의 꿈은 이 설화의 구조를 닮았다. 하지만 기억을 잃은 것은 뱀사내가 아니라 여인이다. 기억을 찾아 나선 여인은 얼굴에 뱀비늘이 돋은 사내(조정근)를 만나 짝사랑하게 된다.
이는 지독한 가치전도를 낳는다. 높은 곳을 꿈꾸다 추락한 범죄자나 사회적 약자들에게 뱀사내는 ‘한 점의 부끄러움도 없이’ 밑바닥으로 추락할 수 있게 해주는 영웅적 존재이자 ‘더 떨어질 일 없는 가장 안전한 낙원’을 제공해주는 신적 존재가 된다. 사람들은 이제 저 높은 곳에 있는 사람들을 비웃으며 앞다퉈 지하생활자가 된다. 그 대신 그들은 자신의 기억을 지우고, 염치도 버린다.
그들의 대열에 여인도 끼어 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과 달리 기억을 찾기 위해 뱀사내를 찾아온 여인의 순애보적 사랑고백은 뱀사내를 흔들어놓고 만다. 이는 자신을 왕으로 섬기겠다는 추종자들을 향한 독설로 이어진다. “너희들은 내 등을 밟고 서지만 내 밑으로는 시커먼 수렁만이 놓여 있다. 너희들은 아직도 기회가 되면 높이 올라갈 꿈을 꾸지.…내가 빠져나가면 너희들은 그 수렁 속으로 떨어질 것이다.”
결국 추종자의 손에 살해되고 마는 뱀사내는 “당신은 어떤 사람이에요?”라는 여인의 질문에 “당신을 죽인 사람”이란 답을 남긴다. 그렇다면 여인의 사랑은 스톡홀름 증후군(인질이 인질범에게 동화되는 심리현상)에 불과한 것일까.
아니다. 이 연극은 마치 꼬리를 물고 있는 뱀처럼 시작과 끝이 맞물려 있다. 여인은 처음부터 자신에게 ‘묻지 마 폭력’을 휘두른 ‘얼굴 없는 존재’를 찾아 나선 것임을 상기하자. 뱀사내는 여인을 살해한 고유명사가 아니다. 여인과 같은 희생자를 무수하게 생산하는 ‘사회적 범죄’를 대표하는 보편명사다. 그래서 꿈과 신화의 비늘을 쓰고 있는 것이다.
여인의 사랑은 바로 그렇게 절망적인 상황에서 인두겁까지 벗어던질 수밖에 없는 존재에 대한 인간애다. 그리스신화에서 여인에 해당하는 프시케가 ‘영혼’을 뜻함을 상기해보자. 반면 그들을 손가락질하며 살아가는 우리 자신이야말로 기억도 염치도 지워버린 지하생활자들 아닐까.
사회적 폭력의 문제를 천착해온 고연옥 작가와 김광보 연출은 이 작품을 통해 신화적 진화를 성취한다. 꿈과 신화의 갈피 속에서 섬세한 날갯짓을 펼치던 희곡은 해학적인 마당극 형식의 회오리바람을 만나 펄펄 날아오르는 생동감을 획득한다. 다채로운 국악기를 연주하면서 지극히 상징적인 연극을 질펀한 마당극 형태로 소화해낸 열두 배우의 앙상블도 좋다. 다만, 극 전반부에 전개되는 단편적 에피소드들이 관객의 몰입을 방해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녹아들 수 있도록 하는 극적 장치가 필요해 보인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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