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텔의 문화인류학자 제네비브 벨 박사가 말하는 ‘지루함의 미학’
요즘 많은 사람이 윤 씨처럼 시간을 ‘생산적’으로 쓰기 위해 노력한다. 예전에는 직장에 있는 시간 외에는 인터넷에 연결돼 있지 않을 때가 많았다. 하지만 이제는 언제 어디서나 접속하고 수많은 정보를 쉽게 찾을 수 있다. 우리는 더욱 생산적이 됐다고 느낀다. 진짜 그럴까.
“뇌는 정작 그렇게 느끼지 않아요.”
벨 박사는 동아일보와의 e메일 인터뷰에서 “지루함을 느끼는 순간에 뇌는 스스로를 돌아보고 새롭고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떠올릴 수 있도록 한다”며 “결국 지루함은 한없이 매력적인 주제이며 우리 인간에게 이로운 것”이라고 말했다.
○ “지루할 때 혁신이 나온다”
벨 박사는 2008년 워싱턴대에서 나온 ‘지루한 뇌’에 대한 논문을 예로 들었다. 연구를 진행한 이 대학 마크 민턴 방사선학과 교수는 사람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지루해할 때의 뇌 사진을 찍었다. 그 결과 뇌가 ‘현재 아무것도 할 일이 없다’고 느낄 때, 열심히 정보를 처리하고 있을 때보다 에너지 소비량이 5% 줄어드는 것으로 조사됐다. 뇌가 에너지를 적게 쓰면서 창의적인 생각에 이르게 한다는 얘기다.
벨 박사는 “언제나 인터넷에 ‘연결된’ 세상이 된다는 건 우리가 즐겁게 시간을 보낼 일이 많아진다는 얘기”라며 “그 말은 동시에 아무것도 하지 않고 멀뚱히 빈둥대던 시간들이 사라지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IT 칼럼니스트 니컬러스 카 씨도 저서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에서 “디지털 기기에 생각하는 능력을 ‘아웃소싱’하면서 뇌가 창의적인 생각을 찾아내기보다 정보를 처리하는 데에 급급하게 된다”고 썼다. 수많은 정보를 받아들이는 데만 쓰다 보면 뇌의 해당 영역만 비대해진다는 뜻이다.
이에 따라 일부는 본능적으로 디지털 기기들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기도 하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을 일부러 만들며 스스로를 돌아보는 시간을 갖는다는 얘기다. 벨 박사는 “최근 연구에서 일부 사람이 지속적인 디지털 세례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인터넷 접속이 불가능한 장소를 찾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고 말했다.
○ IT와 인문학의 만남
벨 박사가 인텔에서 인류의 삶과 IT 혁명의 관계를 연구하는 것처럼 최근 IT업계에서는 인문학과 기술을 접목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벨 박사는 “인텔의 팀에는 공학자, 소프트웨어 전문가, 하드웨어 전문가뿐 아니라 디자이너, 인류학자, 심리학자, 과학소설 작가까지 함께 일하고 있다”며 “이러한 다양성에서 소비자가 필요한 기술을 찾아낼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현수 기자 kimh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