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영 문화부 차장
‘꼼풍’을 일으키고 있는 나꼼수는 디지털 언론의 특징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법적으로 공정할 의무가 없는 데다 정부에 등록된 인터넷 언론만 2900개가 넘는 현실에서 돈 안 들이고 살아남는 전략은 선정성과 편향성이다. 나꼼수는 대놓고 편파적이다. 1회 ‘BBK 총정리’부터 23회 ‘홍준표 대표 초청 관훈토론회’까지 대부분이 여권을 비판하는 내용이었다. 17회 ‘곽노현 10·26사건’에 대해서는 진보 진영에서도 “심했다”는 비난이 나왔다.
검증한 뒤 보도하는 전통 언론과 달리 디지털 언론은 일단 터뜨린 뒤 검증을 받는다. 소문이나 억측 같은 사실 확인을 거쳐야 하는 뉴스의 원재료들이 바로 상품이 된다. 나꼼수에도 솔깃한 음모론들이 등장한다. ‘서태지-이지아의 이혼소송 기사가 터진 건 BBK 관련 기사를 덮기 위한 초대형 떡밥’이었고, ‘4대강 건설에서 수심 6m 판다고 정부 돈을 받은 뒤 5m만 파면 2조 원이 남는데 그 돈을 각하가 가져갔을 수 있다’는 식이다. 온갖 음모론을 사실인 양 얘기한 뒤 “터무니없는 소설이다. 각하는 절대 그럴 분이 아니다”라고 넘어가면 그만이다.
월터 리프먼의 ‘신문은 민주주의의 성경’이라는 구절을 가슴에 새긴 당시 언론은 대형사고 보도 때 써서는 안 되는 형용사를 골라내는 신중함으로 사람들이 사고 발생 나흘 만에 일상을 되찾을 수 있도록 도왔다. 만약 인터넷이 발달한 요즘 이 사고가 터졌다면 걸러지지 않은 억측과 주장들이 인터넷을 통해 쏟아져 사고보다 더한 혼란을 야기했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인터넷 강국인 한국은 천안함 사건과 동일본 대지진 때 이미 겪었던 시나리오다.
나꼼수가 성공했으니 비슷한 프로가 수도 없이 생겨날 것이다. 자매프로 ‘나는 꼽사리다’는 곧 방송을 한다는 소식이다. 보수 진영에서도 ‘박원순 후보의 부친은 정신대 모집책이었다’는 미확인 설을 풍자에 은근슬쩍 사실처럼 끼워 넣는 프로가 나올 것이다. 그 어느 때보다 풍부한 언론을 향유하게 된 사람들은 검증의 책임도 져야 한다. 스스로 깨어 있지 않으면 미디어는 풍요로우나 민주주의는 가난한(rich media, poor democracy) 시대를 살아야 한다.
이진영 문화부 차장 eco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