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애플과의 전쟁’ 적극 행보… 삼성그룹 경영 전면 나서나
이재용 삼성전자 사장이 달라졌다. 이 사장은 평소 부친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을 그림자처럼 수행하면서 존재감을 드러내지 않았지만 19일 그의 모습은 달랐다.
이 사장은 아시아 지역 경제인으로는 유일하게 스티브 잡스 전 애플 최고경영자(CEO)의 추도식에 참석하고 이날 오전 김포공항으로 귀국했다. 그는 공항에서 기자들을 만나 10여 분 동안 팀 쿡 애플 CEO와의 만남과 두 회사의 향후 관계에 대해 소상하게 설명했다. 이 사장이 이처럼 언론에 오랜 시간 노출된 것은 이례적이다. 이를 두고 삼성 안팎에서는 그룹 후계구도 다지기에 속도가 붙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왔다.
○ “부품은 협력, 소송은 별도”
이 사장은 공항에서 “잡스의 추도식 다음 날 쿡 CEO의 사무실에 찾아가 2∼3시간을 만났다”라며 “잡스와의 지난 10년간 어려웠던 이야기, 위기 극복, 양사 간 좋은 관계를 더 발전시켜야겠다는 이야기가 중심이었다”라고 말했다.
또 그는 기자들이 질문하지 않은 애플에 대한 부품 공급문제에 대해서도 먼저 말을 꺼내 “내년까지는 (부품 공급을) 그대로 할 것이다”라며 “2013∼2014년엔 어떻게 더 좋은 부품을 공급할까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라고 적극적으로 설명했다.
이 사장의 발언은 쿡 CEO와의 만남에서 최소한 2014년까지는 삼성전자가 애플에 부품을 공급하는 것을 전제로 서로 협력을 강화하는 방안을 논의했음을 시사한 것이라고 삼성 관계자는 풀이했다. 삼성전자는 현재 컴퓨터 중앙처리장치(CPU)에 해당하는 스마트폰의 핵심 칩인 AP를 비롯해 모바일 D램 등의 부품을 애플에 공급하고 있다. 이로써 삼성전자와 치열한 특허소송 전쟁을 벌이고 있는 애플이 ‘아이폰5’ 등 차기 제품 생산에 필요한 부품을 대만 TSMC사 등에서 조달할 것이라는 예측은 당분간 잠잠해질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사장은 애플에 대해 추가로 특허소송을 낼 계획이 있느냐는 질문에는 “법무팀이 필요하면 할 것이고, 아니면 안 할 것이다. 생각을 해봐야 한다”며 말을 아꼈다. 이 사장은 또 쿡 CEO와 소송문제를 논의했느냐는 물음에도 “예전에도, 지금도, 앞으로도 소비자를 위해 페어플레이하면서 치열하게 경쟁할 것”이라며 완곡하게 답변했다.
○ 달라진 이재용, 연내 승진하나
재계는 이처럼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이 사장을 두고 그가 본격적으로 그룹 경영의 전면에 나서기 시작한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이 사장이 급변하는 모바일 시장에 대한 빠른 적응력과 결단력을 바탕으로 부친의 역할을 일정 부분 대신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 사장은 최근 국내외에서 다른 기업 오너, CEO들과 적극적으로 접촉하며 입지를 다지고 있다. 올해 초 구본무 LG그룹 회장에게 직접 신년인사를 다녀온 데 이어 4월 말과 지난달 말에는 정준양 포스코 회장과 상호 교차방문을 하기도 했다. 이에 따라 삼성 안팎에서는 지난해 사장이 된 이 사장이 올해 말 그룹 임원인사 때 부회장으로 승진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또래인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 등과 격(格)을 맞추는 동시에 후계구도 다지기에 속도를 내지 않겠냐는 이유에서다.
전성철 기자 daw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