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재분야 블루오션 개척한 영림목재
영림목재㈜ 이경호 사장(62)의 집무실에는 큼지막한 액자가 걸려 있다. 액자에는 이 회사의 어려웠던 과거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1997년 12월 3일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 때 우리 회사에는 어떤 일이 생겼나’란 제목 밑으로 당시의 상황을 엿볼 수 있는 문건과 이 사장이 당시 직접 써 놓은 메모가 정리돼 있다. 거래업체의 부도로 받을 어음이 부도가 난 일에서 한국수출입은행의 도움을 받은 일, 그리고 미국 등에서 수입해 온 나무 등 원자재를 동남아에 다시 수출한 일 등….
“기업의 규모나 매출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진리를 회사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 느꼈습니다. 그래서 뼈아픈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가끔 액자를 보며 자신을 채찍질하고 있죠.”
이 회사는 40∼50년 전 한국의 산에 심어진 리기다소나무 등을 이용해 고부가가치 친환경 ‘목재옹벽’을 만들어 도로공사를 한 뒤 남겨진 절개지에 이를 설치해 호응을 얻고 있다. 실제로 광주 신창지구 산월 분기점(JCT) 도로공사 현장에 목재옹벽을 설치해 회색빛 콘크리트 옹벽에서 벗어나 친환경 원자재를 사용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 목재옹벽을 비롯해 하천방틀재는 현재 한강과 낙동강, 영산강 등 4대강 사업의 주요 공구에 사용돼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이 사장은 “박정희 대통령 시절 산림녹화를 위해 전국에 심어 놓은 속성수인 리기다소나무와 낙엽송을 어떻게 활용할까 고민하다 친환경 목재옹벽을 개발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 사장은 대학졸업 후 대우전자 해외무역부에서 유럽 수출업무를 담당하다 1978년 가업을 물려받았다. 초기에는 샘표식품 삼립식품 등에 제품을 담는 나무상자를 납품했다. 이후 삼성전자에 TV 등 제품을 보관하는 목재 케이스를 대량 납품하면서 회사의 규모도 커졌다.
그러나 이 사장은 현재에 안주하는 길을 택하지 않았다.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기 위해 고민했다. 회사를 맡은 지 10년 만에 과감하게 특수목(특정 용도로 쓰이는 원목) 분야에 뛰어들었다. 이때부터 미국과 캐나다, 알래스카 등을 돌아다녔다. 참나무와 단풍나무 등 최고급 나무 산지의 현장을 누빈 것.
그 뒤 그는 홀연히 새로운 분야의 개척을 위해 목재 선진국인 일본에 유학을 떠난다. 2002년 9월 1년 동안 일본 와세다대에 연구원 신청을 한 것.
“홋카이도 등 46개 현을 돌아다니며 목재 선진국인 일본을 철저하게 공부했죠. 목재 관련 세미나와 포럼 등 다 참석했어요.”
한국에 돌아와 나무 덱과 펜스, 벤치, 파고라 등 조경에 관심을 기울여 새로운 제품을 개발한다. 2004년 산림청에 낙엽송과 리기다소나무의 간벌과 가지치기를 제안한다. 이들 나무도 활용하기에 따라 얼마든지 경제목처럼 사용할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 영림목재는 국산 낙엽송을 이용해 교실 및 체육관 바닥재를 생산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목재산업 발전에 대한 열정과 연구정신은 그대로 이 사장의 아들인 이승환 이사(28)에게 전해졌다. 5년째 경영수업을 받느라 여념이 없는 그는 3대째 가업을 잇는 주인공이 된다.
영림목재는 현재 인천 북항 배후단지에 2만3182m² 규모로 공장 신축을 추진하고 있다.
이 사장은 현재 중소기업중앙회 부회장과 한국목재공업협동조합 이사장, 한국파렛트컨테이너협회 회장, 인천사랑회 회장 등 다양한 직책을 맡아 활발한 사회활동을 펼치고 있다.
차준호 기자 run-jun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