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에 방음재 대신 달걀판 쓰며 돈 아끼더니…매주 모인 헌금 전액을 봉사에 ‘펑펑’ 쓰더니…매년 1000명에게 ‘빛’ 선물
부산 강서구 송정동 세계로교회가 들어선 지역은 한때 마을과 교회 터가 모두 바닷가에 위치한 염전지대였다. 손현보 담임목사는 “교회가 소금의 역할을 제대로 하라는 뜻으로 여긴다”며 “봉사는 무엇보다 전염성이 강하다”고 말했다. 일러스트레이션 권기령 기자 beanoil@donga.com
1980년대 초반 생선도 없는 밥상머리에서 약관의 신학도가 던지는 질문이 가시처럼 날카로웠다. 고희를 넘긴 스님은 기가 찼다. 애당초 ‘싹수가 보여’ 제자로 키워볼까 했는데…. 몇 년 전 학생이 신학대에 진학하려는데 돈이 없다고 하자 등록금 60만 원을 쥐여준 스님이었다. 학생이 입학 뒤 다시 “기숙사비도, 식비도 없어 죽겠다”고 찾아오자 “절밥 먹으며 등하교하라”며 선뜻 방을 내주기도 했다. 그런 학생이 스님에게 전도를 한 것이다. 스님은 “예수를 잘 믿어서 좋은 부처가 돼라”고 받아쳤다. 젊은 신학도는 군 제대 후 스님의 부고를 전해 들었다. 서둘러 절을 찾았지만 남은 건 영정 하나뿐이었다. “스님의 법명조차 몰랐는데. 슬픔이 이루 말할 수 없었죠.” 먹이고 재워준 스님마저 전도하려던 혈기 넘치던 신학도는 타종교인이지만 당시 스님이 베풀었던 보편적 사랑을 실천하는 목회자가 됐다.》
세계로교회 앞 잔디밭에서 식사를 하며 편안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신자들. 부산=임희윤 기자 imi@donga.com
세계로교회는 크고 작은 봉사로 이름나 있다. 개안수술이 대표적이다. 매년 약 1000명의 환자가 교회의 도움으로 ‘빛’을 되찾고 있다. “10년 전, 여든을 넘긴 어머니가 갑자기 눈이 안 보인다고 하시더군요. 병원 가서 수술을 했는데 이틀 만에 ‘잘 보인다’며 신기해하셨어요. 그때 ‘이렇게 쉽게 사람들에게 빛을 안겨줄 수 있구나’ 하며 무릎을 쳤죠.”(손 목사)
그해 당장 교회는 지역주민 50여 명의 개안수술 비용을 전액 지원했다. 소문이 퍼져 최근에는 전국 각지에서 문의가 오고 있다.
교회는 이름처럼 사회에 대한 나눔과 도움의 길을 ‘세계로’ 넓혔다. 외국인 근로자들이 매년 모여드는 녹산공단과 농어촌을 낀 협소한 입지가 되레 이를 가능케 했다. ‘지역 내 다문화가정의 베트남 주부가 친정이 너무 그리운데 형편이 어려워 가보지 못한다’는 말을 듣고 왕복 비행기 삯을 지원했다.
노인들을 위한 보청기 지원과 집수리, 청소 지원도 주요 사업이다. 교인들의 자발적인 봉사가 이런 사회봉사의 밑거름이 되고 있다. 봉사 ‘아이템’이 마르지 않는 것은 독특한 의결기구가 교회의 중심에 있기 때문. 딱딱한 당회 대신 가족적인 분위기에서 이뤄지는 ‘중직자(重職者) 회의’다. 목사와 장로, 집사 등의 부부로 이뤄진 100여 명이 자주 모여 “주위에 도울 만한 사람 또 없을까”라며 의견을 모은다. 의결된 안건은 바로바로 집행된다. 개안수술 건도 손 목사가 여기서 발의해 만장일치로 채택됐다.
방음재용 달걀판이 아니더라도 손 목사는 달걀과 인연이 깊다. 1993년 2월 신학대학원의 마지막 과정으로 경남 함안군의 한센병 환자촌 교회에 머물 때 일이다. 서울과 경기 부천시, 경남 밀양시 등의 교회 몇 곳에서 목사 청빙 요청이 왔지만 판단이 서지 않았다. ‘주말 지나고 월요일에 가장 먼저 연락이 오는 교회로 간다’고 결심했다. 월요일 아침, 그는 달걀 값이 폭락했다는 얘기에 양계 농가를 돕기 위해 직접 달걀을 싸들고 시내 장터로 나섰다. 어려움 끝에 겨우 달걀을 다 팔고 돌아왔다. 이때 세계로교회(당시 녹산제일교회)에서 와 달라는 전화가 왔다. 손 목사는 바로 짐을 꾸려 부산으로 향했다.
“달걀을 통해 새 생명이 번성하듯 봉사가 봉사를 낳는 교회를 일구게 되는 전조였나 봅니다. 교회는 이익단체가 아닙니다. 희생을 자원해야 하죠. 여긴 애초에 염전이 있던 땅입니다. 빛과 소금이 되라는 게 교회의 소명 아닙니까.”
부산=임희윤 기자 imi@donga.com
▼손현보 목사의 ‘배우고 싶은 목회자’ 윤석전 목사▼
작은 교회 헌신적 지원… 섬김의 가르침 깨달아
부산 세계로교회 손현보 목사(왼쪽)과 서울 연세중앙교회 윤석전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