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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최예나]학부모가 조사에 응했는데… 자녀가 웬 봉사점수

입력 | 2011-10-21 03:00:00


최예나 교육복지부

학부모 A 씨는 최근 담임교사에게서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를 한 통 받았다. ‘2차 사교육비 조사 학부모 요청: 학생에게 봉사활동 확인증 발급(2시간), 사은품(문화상품권) 제공.’

A 씨는 “자녀에게 봉사활동 시간을 인정해줄 테니 사교육비 조사에 참여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교사에게 부탁받은 거라 조사에 응했지만 교육적으로 옳은 일인지 조금 고민됐다”고 말했다. 이번 조사는 통계청과 교육과학기술부가 5∼18일 실시했다. 초중고교 학생의 사교육비 실태를 확인해 사교육비 경감대책과 공교육 내실화 등 교육정책 수립에 참고하려고 2007년부터 해마다 실시한다.

6월에 1차, 10월에 2차 조사를 해서 다음 해 2월에 발표하는 식이다. 올해는 전국 초중고교 23만1667학급에서 1411학급을 표본으로 뽑고, 학부모 4만5500명에게 내용을 기입하도록 요청했다.

통계청은 조사표를 보내면서 ‘작성이 끝나면 학생에게 봉사활동 확인증(2시간)을 발급해 준다’고 안내한다. 학부모가 서면이나 인터넷으로 답변을 완료하면 통계청이 담임교사에게 관리자 페이지의 ID를 주고 학생의 봉사활동 확인증을 출력할 수 있게 한다. 통계청에 따르면 2007년부터 지금까지 학생 약 19만5000명이 이런 식으로 1차와 2차에 각각 2시간씩 봉사활동을 인정받았다.

통계청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설명한다. 복지통계과 관계자는 “사교육비 조사는 학부모와 학생의 공동 작업이라고 본다. 또 대부분 조사에 참여하기를 귀찮아하는데 표본으로 뽑혀 공적인 일에 동참한 만큼 봉사로 인정하는 게 부당하다고 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대학 입시의 입학사정관전형에서 비교과 영역이 중요해지면서 학생들이 스펙만을 위해 봉사활동에 나서는 현실을 감안하면 씁쓸하다. 그렇지 않아도 봉사활동 시간만 쌓으려고 쓰레기를 줍거나 실제 활동보다 많이 인정받는 등의 문제점이 여러 차례 지적됐다. 부모가 봉사활동을 대신해도 괜찮다는 인식을 학생에게 심어줄 수 있다. 학부모 B 씨는 “표본에 뽑혔다는 이유만으로 엄마가 조사에 응하고 자녀가 봉사를 인정받는 방식은 봉사활동의 원래 취지와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다른 학부모 C 씨는 “지난해 인구주택총조사 때도 봉사활동 시간을 인정하는 게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그때는 학생이 참여하기라도 했는데, 이번 조사는 학부모가 전적으로 한다는 점에서 문제의 소지가 있다”는 의견을 밝혔다. 입시를 위해서가 아니라 마음에서 우러나와 봉사활동을 하는 모습은 우리 현실에서 기대하기 어려울까.

최예나 교육복지부 yen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