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리 본능/리처드 랭엄 지음·조현욱 옮김/312쪽·1만7000원·사이언스북스
300만 년의 시간이 흐르면서 납작한 이마는 도톰하게 튀어나왔고, 턱과 입은 작아졌으며, 치아는 조약돌처럼 무뎌졌다. 머리는 커지고 몸통은 작아진 그들은 굵고 튼튼해진 다리로 완벽하게 직립보행을 하게 됐다. 그들에게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진 걸까.
미국 하버드대 교수이자 진화인류학자인 저자는 “불을 통해 요리를 발명하고 맛에 탐닉한 순간 인류의 역사는 격변하기 시작했다. 인류의 가장 중요하고 위대한 발명은 도구도, 언어도, 농경도, 문명도 아닌 요리”라고 주장하며 다양한 연구 결과와 사례들로 이 주장을 뒷받침한다. 지난 해 영국에서 방영된 BBC 다큐멘터리 ‘요리가 우리를 인간으로 만들었나’도 이 책과 같은 주제를 다루고 있다.
이런 점으로 볼 때 인류가 오래전 어느 날 화식(火食)을 시작하면서 같은 재료로도 더 많은 에너지와 충분한 영양분을 얻게 됐고 생식력도 훨씬 강해졌다고 저자는 말한다. 또 인간의 무딘 치아, 약한 턱, 작은 소화기관 역시 부드럽고 열량이 높으며 섬유질 함량이 낮고 소화가 잘되는 ‘익힌 음식’의 특성에 적응한 결과라는 것.
한 걸음 더 나아가 이 책은 인류가 지금과 같이 고도로 발전된 문명사회를 만들 수 있었던 것도 요리 덕분이라고 강조한다. 날것에 비해 익힌 음식에서 추가로 얻은 에너지와 소화기관이 줄어들며 절약하게 된 에너지가 뇌로 공급되면서 인간은 그 어떤 동물보다 크고 정교한 뇌를 가지게 됐다. 그 결과 인류는 높은 지능을 바탕으로 정교한 언어를 구사하고 협력과 경쟁을 통해 문명사회를 발전시킬 수 있었다는 것이다. 결혼이라는 제도 역시 ‘사냥하는 자’와 ‘요리하는 자’라는 성별 분업으로 탄생됐다고 설명한다.
인류가 언제부터 불을 이용해 요리를 시작했는지 정확히 알려지진 않았다. 익힌 음식을 먹어본 적이 없는 야생 동물도 일단 익힌 것을 맛보고 나면 날것보다 더 좋아한다는 여러 연구 결과에서 알 수 있듯, 우리의 할머니의 할머니의 할머니도 우연히 불 속에 먹을거리를 떨어뜨리거나 불똥이 튀어 주변부가 익은 음식을 맛보게 되면서 날것보다 익힌 것을 선호하게 됐을 것으로 보인다.
이 작고도 위대한 요리의 발견, 그리고 인류와 함께한 장대한 여정을 쉽고 흥미롭게 풀어주는 책이다. ‘하루 한 끼 그냥 때워야지’ 하는 생각이 우리 인류의 기원과 진화의 역사를 얼마나 모욕하는 것인지 새삼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