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옛시에 매혹되다/김풍기 지음/308쪽·1만4800원·푸르메
연암 박지원(1737∼1805)의 이 시는 ‘그립다’고 말하지 않으면서도 그리움을 진하게 표현한다. 형님이 돌아가셨다는 사실조차 직접 드러내지 않는다. 연암은 23세에서 35세 사이에 모친, 조부, 부친, 누님을 차례로 여의었다. 이 시는 연암이 51세 때 유일한 기둥이었던 형님이 세상을 떠난 뒤 쓴 것이다. 한시(漢詩)는 절제와 축약의 예술이다. ‘그립다’ ‘힘들다’ 같은 감정은 직설적으로 드러내지 않고 행간에 숨긴다.
‘사람은 이제 산골 집의 문을 닫고/구름 또한 높은 봉우리로 돌아간다./뱁새 쉬지 않고 날아가나니/저 숲 속에 무슨 즐거움 있는 것일까.’(김창흡, ‘갈역잡영·葛驛雜詠’)
‘아무도 없이 혼자 마시는 것 그리 잘못은 아니지/술병 말랐다고 국화의 비웃음 살까 봐/책 잡히고 옷 잡혀서 술을 사왔네.’(신위, ‘국화’)
옛사람들은 꽃 핑계를 대며 풍류를 만들어냈다. 책의 질서정연함과 옷의 가식을 벗어던지고 술과 국화의 자연 세계로 스며드는 작자의 흥취가 어렵지 않은 언어로 표현됐다.
이 책은 중국, 고려, 조선시대의 옛 시들을 17개의 다양한 주제어로 분류해 정리했다. 시를 최상위 텍스트로 올려놓고 ‘공자 왈 맹자 왈’ 가르치려 하지 않는다. 담백한 에세이로 옛사람들의 생활상, 관습과 제도, 감성 등을 다양하게 풀어내며 한시를 얹는 형식이다. 차(茶), 여행, 이별 같은 일반론으로 시작해 이를 표현한 옛 시를 소개한 뒤 그 뒷이야기를 찬찬히 들려준다.
옛 시의 풍취에 더한 저자 자신의 관조 역시 책 곳곳에 담아냈다. ‘그를 맞아 잘 대접하다 보면 병은 어느새 친밀한 벗으로 변한다. 그 벗이 나를 죽음으로 데려갈 수도 있지만, 내 삶의 차원을 전혀 다른 곳으로 안내할 수도 있다.’ ‘온갖 꽃향기가 사라졌을 때 비로소 인간의 향기가 빛을 발하는 법이다.’
임희윤 기자 im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