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우면 생각나는 ‘그때 그 여인’
캐리커처 최남진 기자 namjin@donga.com
고 박정희 대통령 서거 공판에 증인으로 출두한 심수봉(왼쪽 모자 눌러쓴 이). 오른쪽은 함께 증인으로 출두한 신재순 씨. 동아일보DB
제2회 대학가요제는 당시 명지대 재학생이던 심민경에게 아무런 상도 안겨주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하루아침에 신데렐라가 되었다. 통기타의 하이킹 노래에나 놓임직한 ‘뚜바 뚜바…’의 서주부 스캣이 인도하는 ‘그때 그 사람’은 트로트의 전통적인 문법을 완전히 혁신시킨 것은 아니었지만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입에 달라붙는 비상한 매력을 품고 있었다. 이 노래를 통해 장발과 청바지로 상징되던 청년문화에 대한 기성세대의 반감과 반짝이 드레스와 야간업소의 축축한 분위기에 눈살을 찌푸렸던 청년 세대의 혐오감이 참으로 이상한 화해와 동감에 합류했던 것이다. 그것은 모든 것이 얼어붙은 시간의 문화적 절망이었으며 길을 잃은 낭만주의의 목로주점이었다. 그 음습한 분위기는 이 노래가 탄생한 지 꼭 1년 뒤 궁정동에 울려 퍼진 총성으로 비극적인 1막을 내린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망각 속으로 사라졌던 이 비운의 여인은 한국 대중음악의 원류인 트로트가 10대 문화의 돌풍 속에 속절없는 하야 선언을 강요받을 때인 1980년대 중반 기적처럼 재기에 성공한다.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를 머리곡으로 앞세운 1984년의 ‘심수봉 신곡집’은 60년에 이르는 유구한 트로트의 역사에 여성 싱어송라이터의 탄생을 알리는 고고성이면서 트로트 계열에서 전무후무한 완벽한 ‘앨범’이다. 이난영에서 이미자로 이어지는 트로트의 역사에서 심수봉이 이룬 작은 혁명은, 트로트의 애상적인 미의식에 기반하면서도 일본적인 요나누키(7음계의 ‘레’와 ‘솔’을 뺀)단조 5음계의 그늘에서 벗어나 동시대 감각의 결을 다양하게 아로새겼다는 점이다. 이를 통해 그는 거의 ‘혼자만의 힘으로’ 이 땅의 트로트라는, 고사해 가는 거목이 새로운 모색의 커튼을 열어젖힐 수 있도록 했다. 이 앨범은 노래를 아는 여인의 위대한 비망록이다.
심수봉의 대중음악사적 지위는 데뷔 30년이 지난 시점에서도 여전히 독보적이다. 식민지 시대 이래 한국에서의 여성 뮤지션의 운명은 거의 예외 없이 남자들이 지배하는 쇼 비즈니스 논리에 갇혀 있었으며 예술적인 측면에서도 마찬가지로 온실 속 화초 이상의 지위에서 벗어나기 어려웠다. 이 냉엄한 정글의 규칙을 정면에서 뒤엎은 선두주자가 비련의 이미지로 그득한 트로트 진영에서 처음 나왔다는 사실은 한국 대중음악사의 의미심장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심수봉은 1994년에 이르러 1984년 앨범과 짝을 이루는 또 하나의 수작 앨범 ‘연가’를 1990년대 최고의 편곡자이자 세션맨인 조동익과 더불어 완성함으로써 유일무이한 한국 트로트 아티스트로서의 느낌표를 찍는다. 이 앨범의 머리곡인 ‘비나리’가 자아내는 고귀한 애상은 바로 숱한 힐난과 사시의 푸대접 속에서도 현대사의 한국 대중의 심금을 장악해 왔던 이 장르의 성숙한 결정판이다.
숱하디숱한 트로트 보컬리스트 어느 누구도 심수봉의 목소리를 복제할 수 없다. 그의 목소리는 파란과 곡절의 터널을 숱하게 통과해온 1970, 80년대 대한민국을 살아낸 이들의 아련한 슬픔과 끊어질 듯 끊어지지 않는 열정의 복화술인 것이다.
강헌 대중음악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