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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동빈 기자의 자동차 이야기]GM의 부활 예고… 한국엔 위기 경고

입력 | 2011-10-25 03:00:00


최근 미국 자동차산업의 심장부인 미시간 주 디트로이트에 다녀왔다. 세계 최대 자동차회사인 미국 제네럴모터스(GM)의 쉐보레 브랜드 100주년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GM은 쉐보레의 100주년을 계기로 글로벌 위상을 강화하려고 20여 개 국가에서 200여 명의 기자들을 초청했다.

GM은 행사장에서 참석자들에게 영상을 통해 쉐보레가 100년간 미국인은 물론 세계인들의 발이 돼주고, 개인의 소중한 추억의 순간에, 굵직한 역사적인 현장에 함께 있었음을 알렸다. 특히 미래의 교통수단인 지능형 전기차 ‘EN-V’도 쉐보레가 주도할 것임을 강조했다.

디자인센터에서 진행된 프로그램에선 GM이 고리타분한 자동차회사가 아니라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하고 감각적인 디자인 언어로 소비자에게 다가가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하고 있는 모습도 보여줬다. 변하는 각 세대(世代)의 기호에 맞춰 자동차 실내 마감재의 선택에서부터 시트의 바느질, 색감, 모니터나 계기반으로 자동차와 소통할 수 있는 그래픽 사용자환경(GUI) 등이 소개됐다. 그들이 디자인 개발에 열정을 다하는 모습뿐만 아니라 디자인센터의 쾌적한 환경과 방대한 규모도 인상적이었다.

이어 GM 헤리티지센터에선 화려했던 과거 자동차들을 구경할 수 있었고 모터스포츠에 대한 열정과 성과도 목격했다. 현대자동차가 1974년 첫 국산 모델인 ‘포니’를 세상에 처음 소개했을 때 쉐보레는 뭘 했을까. 지금 봐도 보디라인이 멋진 스포츠카 ‘콜벳’의 3세대 모델을 생산하고 있었다. 37년 전 감히 넘볼 수 없는 기술과 디자인 격차를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주눅이 들 정도였다.

이어 GM의 자동차성능시험연구소를 방문해 현재 판매되고 있는 쉐보레 모델들을 시승했는데, 자동차의 성능은 예상했던 대로 평범했지만 16.2km²(약 490만 평)에 이르는 광활한 시설에는 압도당하고 말았다. 이처럼 세계 최대 규모의 탄탄한 인프라에 많은 인재들을 갖추고도, 엄청난 수요가 있는 내수시장을 두고도 어떻게 몇 년 전만 해도 그저 그런 품질과 디자인의 자동차를 만들어내서 위기에 빠질 수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였다. GM의 디자인센터와 자동차성능시험연구소의 규모는 현대·기아자동차의 그것보다 3∼4배, 미국 내수시장은 한국보다 10배가량 크다. 이런 풍부한 자원들이 오히려 GM 내부의 긴장감을 풀어놓아 방만한 경영과 도덕적 해이로 스스로를 망친 것으로 보인다.

GM은 변하고 있다. 허리띠를 졸라매고 노력하고 있는 모습을 볼 때 2, 3년 뒤엔 훨씬 좋은 결과물이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중국과 인도 등 신흥시장에 대한 공세가 강화됐다. 쉐보레 100주년 행사장에서 상영된 전기차 EN-V의 컴퓨터그래픽 배경이 중국이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현재 자동차업계의 판세로 볼 때 세계 1위 자동차회사의 자리를 놓고 머지않아 GM과 일본 도요타, 독일 폴크스바겐그룹이 격돌할 것으로 보인다. 한국 자동차산업이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지는 일을 당하지 않으려면 스스로 고래가 되거나 아니면 날쌔고 자신만의 색깔을 가진 돌고래라도 되는 수밖에 없다.―미국 노스헤이븐에서

석동빈 기자 mobidic@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