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문채원이 17일 오후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제48회 대종상영화제 시상식’포토월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국경원 기자 onecut@donga.com
"대종상은 정말 아무런 언질을 안 주더라구요. '신인여배우상 최종병기 활의 문채원'에서 '최종'까지 듣고 하늘이 노랗게 변했다니까요."
지난 20일, 청담동의 한 음식점에서 만난 문채원(25)은 밝은 표정이었다.
2011년은 문채원에게 있어 영화 '최종병기 활(이하 '활')'과 드라마 '공주의 남자'로 흥행배우로 자리 잡는 해였다.
하지만 처음부터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공주의 남자' 초반, 문채원은 연기력 논란에 직면했다. 김영철 이순재 이민우 홍수현 등 베테랑 연기자들 사이에서 긴장한 것이 문제였다.
"사극은 사극다운 묘미를 느끼려고 보는 분들이 많잖아요? 그런데 제가 맡은 역은 어쨌거나 만들어진 인물이다 보니까… 제 나름대로 '로미오와 줄리엣'의 맛을 살리려고 한 게 너무 튀었던 것 같아요. '활'이 끝나고 하루 딱 쉬고 '공남' 촬영을 시작하다보니 초반에는 준비도 좀 미흡한 부분이 있었고…. 4화 때부터 인터넷을 안 했어요. 주위에서 많이 걱정하셨거든요."
문채원은 한복과 사극이 가장 잘 어울리는 여자 배우 중 한 명으로 꼽힌다. 팬들 중에는 "사복보다 한복이 더 예쁘다"라는 사람들도 많다. 문채원은 "장르를 가리지는 않는다. '아가씨를 부탁해'나 '찬란한 유산'처럼 현대극도 많이 했다"고 말했다.
'외모 때문에 연기력이 저평가받는 것 같다'라는 이야기가 나오자 펄쩍 뛴다.
"제 얼굴이 딱히 미인은 아닌 것 같아요. 대종상 시상식 같은 데 가보면, 저보다 훨씬 얼굴이 입체적인 분들이 많아요. 전 볼 살이 좀 있고, 눈도 소박한 편이라서요. 어깨가 좁지도 않고…. 사극은 정면샷이 많고, 현대극은 옆모습이 많아서 그런가?"
문채원은 “볼 살이 있고, 눈도 소박한 편”이라며 자신이 딱히 미인형은 아니라고 했다. 국경원 스포츠동아 기자 onecut@donga.com
'공남' 초반부는 수양대군(김영철)과 김종서(이순재)가 대립하는 정통 사극적인 부분이 주목받았다. 이에 대해 문채원은 "7화에서 계유정난을 거치면서 멜로로 넘어온 것 같다"며 "멜로가 중심이고, 마무리도 멜로로 끝나는 작품이라 좋았다"고 말했다.
'공남' 중반 이후의 문채원에게 더 이상의 연기력 논란은 없었다. 대신 타이트한 일정 때문에 건강이 문제였다. 문채원은 평소 감기에도 거의 걸리지 않는 튼튼한 체질이다. 하지만 사극을 한 해에 두 편이나 찍다보니 몸이 약해지는 것은 피할 수 없었다.
"감기 때문에 쓰러지기도 하고, 노비 옷 입고 돌아다니는 장면들이 많다보니 피부병이 심하게 생긴 거예요. 목으로 오면 안 되는데, 얼굴로 오면 안 되는데 걱정해보기도 처음이었어요. 마지막 화 방송하던 날까지 찍고, 마지막 회 방송을 종방연 뒤풀이하면서 봤거든요. 비로소 아 이제 정말 끝났구나, 싶더군요. 사실 지나고 나면 힘든 게 없는데."
'공남'에서 문채원은 사랑하는 남자 김승유(박시후)를 살리기 위해 대신 화살을 맞고, 목에 칼을 대고, 목이 졸리는 등 격렬한 연기를 소화했다. 본인의 말마따나 처음 스타덤에 올랐던 "올 세팅된 모습으로, 찾아오는 걸 맞아만 주면되는" '바람의 화원'의 정향 역할과는 전혀 달랐다.
"상황이 워낙 극단적이죠. 현실에선 그런 사랑은 거절할래요. 저는 세령이처럼 절대 못 살아요. 남자 아버지를 우리 아버지가… 상상조차 할 수 없어요. 계속, 막 센 장면이 나오니까 우리끼리 '어떻게 이러지?' 그런 이야기도 했었어요."
사극의 딜레마는 '역사 자체가 스포일러'라는 점이다. '공남' 역시 드라마가 흥행함에 따라 역사적 상황이 알려지며 파멸을 향해 달려가는 내용 때문에 많은 시청자들이 안타까워했다. 그러나 24부 내내 달려온 비극의 호흡과는 달리, 결말은 승유와 세령이 함께 말을 타는 비교적 희망적인 모습으로 반전됐다.
"24부까지 처절하게 아팠으니까 비극으로 정점을 찍어도 임팩트 있었겠지만, 시청자 분들 중에 사랑이 아픈 기억으로 남은 분들이 더 많을 테고…. 그러면 사랑이 끝나지 않고 계속 같이 잘 살 겠네, 하는 결말을 더 원하실 것 같았어요. 물론 승유가 눈이 멀지만, 그건 복수심을 내려놓는 장치이기도 하고요. 이쪽이 더 여운이 진하게 남는 것 같네요."
하지만 반전되는 것은 두 사람뿐, 신면(송종호)과 정종, 경혜공주 등 다른 인물들은 그대로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한다.
"우리 엄마는 신면이 그렇게 불쌍하대요. 신면이야말로 지금으로 따지면 청춘 그 자체, 그 아픈 부분들을 보여주는 인물인 것 같아요. 그런데 어쩌겠어요. 내 님을 죽이려고 하는데. 신면 오빠하고는 '왜 우리는 서로 웃는 장면이 하나도 없나?' 이런 이야기도 하고 그랬죠."
문채원은 다음날부터 휴식 차 어머니와 함께 스페인으로 2주간 여행을 간다고 했다.
"아직 저는 배우 문채원으로 인사드리기는 부족하죠. 내년에도 정향이나 세령이 같은 캐릭터로 인사드려야할 것 같아요. 앞으로도 한 캐릭터, 한 캐릭터 잘 쌓아가고 싶어요."
동아닷컴 김영록 기자 bread42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