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천 조폭 난투극’ 부실대응 자초
21일 발생한 인천 조직폭력배들의 유혈 난투극 당시 경찰의 초동대응과 상황보고가 미숙했던 데에는 있으나 마나 한 경찰의 ‘조폭 대응 매뉴얼’이 한몫한 것으로 나타났다. 경찰은 조직폭력배 130여 명이 인천 길병원 장례식장 앞에 운집해 서로 위협하며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는 상황에서도 공포탄조차 쏘지 않았다. 매뉴얼에 집단폭력 시 총기 사용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규정이 구체적으로 없기 때문이었다. 칼부림이 나 조직원 1명이 중상을 입을 때까지 경찰이 한 조치는 순찰차 안에서 한 경고방송이 전부였다.
○ 총기 사용은 현장 지휘관이 알아서?
경찰의 조폭 대응 매뉴얼인 ‘집단폭력 사건 신고 시 조치요령’을 보면 ‘평소에 조직원들의 동향을 잘 파악하고 집단폭력 사태가 있을 경우 신속히 보고해 추가 병력을 투입해야 한다’는 원론적 내용에 그치고 있다. 언제 단순 집단폭행이 아닌 조폭 사건으로 간주하는지, 공포탄이나 가스총 등 총기는 어느 경우에 사용하는지 등 현장에서 긴급히 판단해야 할 핵심 요소에 대해선 아무 규정이 없다. 경찰 관계자는 “조폭 사건 현장에서 언제 어느 정도 규모의 추가 병력을 요청하고, 총기를 언제 사용할지는 현장 지휘관이 알아서 판단할 일”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일선 경찰관들은 “마땅한 기준도 없는데 괜히 총을 사용했다간 과잉대응으로 징계를 받을까 봐 총 쏠 생각은 아예 못 한다”고 말했다. 총을 쏜 경찰관은 총기 사용이 적합했는지 감찰 조사를 받도록 돼 있어 경찰관에게 상당한 부담이 된다. 실제로 이번 인천 조폭 사건 현장에 출동한 경찰관들은 총기를 전혀 휴대하지 않았고 흉기를 휘두른 신간석파 조직원 K 씨를 검거할 때도 전기충격기를 사용했다.
이번 난투극에 투입된 경찰관들은 이 같은 ‘부실 매뉴얼’조차 지키지 않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 매뉴얼에는 ‘집단폭력 사건은 발생 초기 경력을 집중 투입해 현장에서 전원 검거하는 것이 중요하다’, ‘집단폭력 사건은 관련자들이 많으므로 관할 서장에게 상황을 즉각 보고해 가용 경력을 총출동시켜야 한다’는 조항이 있지만 사건 현장에 기동타격대가 투입된 것은 사건 발생 3시간 20분이 지난 후였다. 관할 경찰서장은 칼부림이 난 지 1시간 10분 뒤에야 사건 현장에 도착했다.
당시 현장에는 양측 조직원 100여 명이 남아 있었고 200여 명의 경찰이 현장에 대기 중이었지만 경찰은 조직원들을 검거하지 않고 해산 명령만 내렸다.
○ 조폭, 합법 가장한 사업으로 세력 확장
인천 사건 이후 경찰의 무능력에 대한 비판이 일자 경찰은 조직폭력배를 대상으로 대대적인 수사에 착수했다. 경찰은 최근 조폭들이 건설업이나 부동산 임대업 등 합법적인 사업을 벌이면서도 은밀하게 폭력과 협박을 일삼으며 부당이득을 챙기는 것으로 보고 있다.
경찰에 따르면 대형 호텔이나 카지노 등을 직접 운영해 돈을 버는 미국 갱단이나 일본 야쿠자 조직과 달리 국내 조폭들은 고정 수입이 없는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유흥업소 운영이나 사채놀이, 용역 등 돈이 되는 분야라면 가리지 않고 뛰어든다는 게 경찰의 설명이다.
특히 이른바 ‘꼬맹이’(조폭 생활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신참 조폭을 부르는 경찰 은어)의 경우 목숨을 걸고 일하고도 양복 한 벌 값, 또는 한 차례 회식 기회만이 대가로 주어지는 경우가 대다수다.
이 때문에 꼬맹이들이 생활비를 벌기 위해 저지르는 ‘생계형 범죄’가 일반 시민에게 큰 위협이 된다고 경찰은 보고 있다. 서울지역 한 경찰서에서 근무하는 A 경감은 “꼬맹이들이 자구책 마련 차원에서 동네에 불법 게임장을 차리거나 사채업체와 손잡고 채무자를 협박해 돈을 받아내는 경우가 많다”며 “최근에는 차량 보험사기에도 많이 뛰어들고 있다”고 설명했다.
‘신흥 조폭’이 늘어나는 것도 경찰이 우려하는 부분이다. 신흥 조폭이란 전년도 말까지 미처 파악하지 못해 관리 대상으로 삼지 않고 있다가 뒤늦게 범죄를 수사하면서 그해 파악한 폭력조직을 말한다. 결국 이들은 ‘관리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셈이다. 이들 신흥 조폭은 주로 관리 대상 조폭 아래 기생하며 세력을 키우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검거된 조폭 중 신흥 조폭 출신은 2017명으로 관리 대상 조폭 1864명보다 많았다. 이 때문에 경찰 내부에서도 신흥 조폭을 더 집중적으로 관리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신흥 폭력조직들은 은밀하게 세를 확장하기 때문에 인지하는 데 시간이 걸린다”며 “이번 인천의 조직폭력 사건에 연루된 신간석파와 크라운파도 인천지역 관리 조폭인 꼴망파 아래 있던 신흥 조직이라 상대적으로 경찰 감시망 밖에 있었다”고 말했다.
인천청장 징계… 총경급 4명 경질
한편 경찰은 최근 불거진 장례식장 유착비리와 인천 조폭 칼부림 사건에 대한 책임을 물어 총경급 간부 4명을 25일 전격 경질했다.
경찰청은 이날 뒷돈을 받고 장례식장에 시신을 인도한 유착비리 사건에 소속 경찰관들이 연루된 영등포경찰서와 구로경찰서의 이주민, 이봉행 서장을 각각 지휘, 감독에 대한 책임을 물어 대기발령했다고 밝혔다. 올 초 장례식장 유착비리 사건의 제보를 받고 감찰을 했지만 혐의를 발견하지 못한 채 내사 종결한 서울경찰청 유현철 청문감사관도 교체됐다.
또 경찰은 21일 인천 길병원 장례식장에서 벌어진 조직폭력배들의 유혈 난투극 사건과 관련해 지휘 감독 및 축소 보고 등의 책임을 물어 신두호 인천지방경찰청장에 대해 견책이나 감봉 등 경징계를 내리고 정해룡 차장도 경고 조치했다. 본청 이상원 수사국장과 정지효 형사과장도 경고를 받았다. 경찰은 이번 사건을 관할한 안영수 인천 남동경찰서장을 직위해제하고 형사과장과 강력팀장, 상황실장, 관할 지구대 순찰팀장을 중징계했다.
신광영 기자 neo@donga.com
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