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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최영해]정치적 중립 중요성 일깨운 美방송인의 ‘자진 하차’

입력 | 2011-10-26 03:00:00


최영해 워싱턴 특파원

“여러분 안녕하세요. 여러분께 알려드려야 할 소식이 있습니다. 지난주 회사 경영진에 제 남편 브로데릭 존슨이 오바마 캠프의 선임고문직을 수락했다고 보고했습니다. 신중히 생각한 끝에 제가 진행하는 프로그램 ‘올 싱즈 컨시더드(All Things Considered)’를 계속 맡기 어렵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오바마 캠프 내에서 제 남편의 위치와 이것이 우리 가족에게 끼칠 영향에 비춰 2012년 대선 때까지 방송 진행 업무에서 물러나기로 했습니다.”

미국 공영방송 NPR의 인기 시사 프로그램 진행자인 유명 여성 방송인 미셸 노리스가 24일 NPR 홈페이지에 올려놓은 글이다.

남편이 버락 오바마 재선 캠프에 들어갔기 때문에 대선이 끝날 때까지 방송 진행 마이크를 놓겠다는 것이다. 노리스가 진행하는 ‘올 싱즈 컨시더드’는 미국인에게 가장 신뢰받는 방송인 NPR의 간판 프로그램이다. NPR 라디오를 틀면 매일 오전 주요 인사를 초청해 인터뷰를 하는 노리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2002년부터 이 프로그램을 진행해온 노리스는 2009년 미 방송기자협회에 의해 ‘올해의 방송인’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노리스는 홈페이지에 띄운 글에서 “이번 주말까지만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방송진행 업무에서 손을 뗄 것”이라며 “하지만 멀리 가지는 않고 새 보도 프로젝트 업무 같은 일을 맡기로 했다”고 밝혔다. 물론 선거 관련 보도에는 일절 간여하지 않겠다고 분명히 밝혔다.

노리스의 남편 존슨은 빌 클린턴 행정부 때 백악관에서 일했고 2004년 대선 때 존 케리 캠프에서 선임고문을 맡았으며, 2008년 대선 때도 오바마 캠프에서 선임고문을 지냈다.

하지만 남편이 정치권 일을 할 때나 아닐 때나 노리스의 방송은 한결같았다. 그런 노리스이기에 설사 남편이 정치인 캠프에서 일한다 해서 ‘올 싱즈 컨시더드’의 정치적 중립성이 훼손될 것이라 의심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럼에도 노리스는 자신의 시사 프로그램 진행이 중립성을 의심받을 수 있다며 자진해서 중도 하차하기로 결정했다. 남편의 일로 행여 프로그램이 불공정 시비에 휘말리는 것을 막겠다는 의지가 엿보인다.

방송 진행자에게 중립성 책임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보여주는 한 미국 여성 방송인의 결단을 보면서 방송을 자신의 이념과 정치관을 세상에 주입시키는 선전도구나 입신출세의 발판으로 여기는 듯한 한국 일부 방송인들의 행태가 대비돼 떠오른다.

최영해 워싱턴 특파원 yhchoi6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