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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세상/박현진]막걸리와 ‘한국인의 역설’

입력 | 2011-10-26 03:00:00


박현진 고려대 식품공학부 교수

1991년 11월 일요일 저녁 에드워드 돌닉 기자는 미국 CBS방송에서 프랑스 사람들은 다량의 고지방과 고콜레스테롤이 함유된 치즈 버터 달걀 고기 등을 평생 먹어도 그보다 건강식을 하는 미국인보다 심장질환에 걸릴 확률이 낮다며, 그 원인은 음식과 함께 레드와인을 마시기 때문일 것이라고 보도했다. 프랑스인들의 역설, 즉 프렌치 패러독스(French Paradox)의 시작이었다. 이는 적포도주와 지중해식 생활방식 때문인 것으로 밝혀졌다. 붉은 색깔을 내는 포도 껍질과 텁텁한 맛을 내는 포도 씨에는 다량의 항산화물질인 페놀화합물이 들어 있다. 페놀화합물은 혈소판 응집 억제에 의한 혈전 감소와 각종 퇴행성 성인병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막걸리에는 프랑스인들의 역설을 뛰어넘을 놀라운 건강 증진 물질이 다량 함유돼 있다는 사실이 과학적으로 규명됐다. 막걸리는 곡류를 이용한 발효식품으로 다른 주종에 비해 알코올 도수가 낮고 위에 부담이 거의 없으며 단백질과 식이섬유, 당질이 함유돼 있다. 스웨덴 카롤린스카 의대 연구팀은 알코올 도수가 높은 증류주를 마실 때는 급성 췌장염에 걸릴 확률이 50% 이상 증가하지만 알코올 도수가 낮은 양조주를 마실 경우 그렇지 않다고 발표했다. 또 막걸리에는 다량의 효모와 유산균이 있고, 이 유익한 균들이 생산한 다양한 유기산과 각종 유용한 생리활성물질이 함유돼 있다.

막걸리를 빚는 전통 누룩에는 급성 및 만성 위궤양 억제, 적포도주에서 발견된 혈소판 응집에 의한 혈전 감소, 혈중 콜레스테롤 저하, 염증 매개체 생성 억제, 암세포 전이 억제 등의 효과가 있는 것으로 동물실험에서 밝혀졌다. 막걸리에는 퓨린 계열 물질이 적어 다른 주종에 비해 통풍 유발 가능성이 매우 낮고, 피부의 주름을 제거하고 피부를 희게 하는 활성이 있다. 또한 항암물질로 알려진 파네졸이 포도주나 맥주보다 10∼25배 더 많이 들어 있다. 상기 결과는 프렌치 패러독스를 뛰어넘는 성과로 막걸리의 우수성을 전 세계에 홍보하면 머지않아 한국인들의 역설, 즉 코리안 패러독스가 만들어질 것이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누룩에 관한 기록이 있고 고려 고종 때 탁주에 관한 술이 등장하는 것을 보면 우리나라 사람은 막걸리의 전신인 탁주를 적어도 1000년 이상 마셔 왔다. 조선시대에만 해도 일곱 집에 한 집꼴로 술을 담가 마셔 전국에 다양한 가양주 문화가 발달했다. 그러나 1917년 들어 일본의 식민지 정책에 의해 주세 부과를 목적으로 집에서 술을 빚는 것이 금지됨에 따라 전국에 있던 다양한 가양주가 사라지는 안타까운 일이 벌어졌다. 1992년 막걸리에 쌀 사용이 다시 허용되고 2001년 막걸리 공급지역 제한제도가 철폐되면서 막걸리의 품질 경쟁시대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2008년 국내와 해외에서 막걸리 붐이 일어 그동안 위기에 처했던 우리나라 막걸리산업 진흥에 큰 전환점이 됐다.

농림수산식품부는 쌀을 수확해 햅쌀 막걸리가 처음 제조되는 시점을 고려해 매년 10월 마지막 목요일을 ‘막걸리의 날’로 지정했다. 첫 행사가 올해 10월 27일 열린다. 프랑스가 그해 수확한 포도로 만든 와인 ‘보졸레누보’를 매년 11월 세 번째 목요일에 세계에서 일제히 판매하는 것을 벤치마킹하여 지정한 것으로 우리 술의 우수성을 내국인은 물론 외국인에게도 널리 알릴 수 있는 행사다.

최근 학계에서는 막걸리의 기능성에 대한 작용 기전을 규명하고 그 우수성을 입증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 머지않아 프렌치 패러독스를 뛰어넘는 코리안 패러독스가 만들어질 것으로 기대된다.

박현진 고려대 식품공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