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정폭력 피해女, 경찰개입 특례법 시행에 “늦었지만 다행”
26일 기자와 만난 가정폭력 희생자 A 씨(21·여)는 과거 일을 떠올리며 여전히 두려움에 떨었다. A 씨의 왼쪽 눈썹에는 커다란 흰색 반창고가 두껍게 붙어 있었다. 술에 취한 아버지가 휘두른 낫에 찔린 상처였다. A 씨가 손바닥으로 막았기 때문에 실명은 피할 수 있었지만 대신 눈썹 부위를 27바늘이나 꿰매야 했다.
10일 밤이었다. 친구와 차를 마시다 어머니의 전화를 받고 서울 관악구 신림동 자택으로 돌아온 A 씨를 맞은 건 잔뜩 술에 취한 아버지였다. 일용직 노동자인 아버지는 다짜고짜 A 씨에게 “술 마실 돈을 내놔라”며 행패를 부렸다. 참다못한 A 씨가 “가족에게 왜 이러느냐”고 맞서자 아버지는 낫을 휘둘렀다. 낫에 찔린 A 씨는 집을 뛰쳐나와 병원으로 갔다. 이 광경을 목격한 어머니 이모 씨(47)도 아버지가 보는 앞에서 수면제 수십 알을 삼켜 병원으로 실려 갔다. 다행히도 이 씨는 목숨은 건졌다.
가정폭력의 그늘 속에 살았던 A 씨 가족의 불행은 이날 하루만이 아니었다. 아버지는 술에 취할 때마다 가족에게 폭력을 휘두르며 행패를 부렸다. A 씨의 언니가 결혼 후 주소도 숨기고 살 정도였다.
A 씨 아버지처럼 가정폭력을 저지르는 이들 중 상당수는 상습범이다. 경찰청에 따르면 2006년부터 올해 7월 말까지 경찰에 검거된 가정폭력범은 한 달 평균 955명에 이른다. 특히 2007년 전체 가정폭력으로 검거된 1만3165명 중 동종 전과가 있는 사람은 1002명이었지만 2010년에는 검거된 가정폭력범이 7992명으로 줄었는데도 동종 전과자의 검거 건수는 1619건으로 오히려 늘었다. 공권력이 막지 않는 한 한번 시작된 가정폭력은 계속되는 경향을 보이는 셈이다.
그러나 26일부터는 가정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이 시행됨에 따라 경찰이 심한 부부싸움 등 가정폭력에 직접 개입할 수 있게 됐다. 법에 따라 경찰관은 현장에서 가정폭력이 재발할 우려가 있거나 법원의 결정을 기다릴 여유가 없을 만큼 상황이 긴급하다고 판단할 경우 피의자에게 △주거지 퇴거 등 격리 △피해자 100m 이내 접근 금지 △전기통신을 이용한 피해자 접근 시도 금지 등의 조치를 임시로 취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피해자가 요청할 때도 같은 조치를 내릴 수 있다.
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김성규 기자 sunggyu@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