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화로에 둘러앉아 고기 구워먹는 날
“서울 풍속에 화로에 숯불을 피워놓고 석쇠를 올려놓은 다음 쇠고기를 기름, 간장, 달걀, 파, 마늘, 후춧가루 등으로 양념해 구우며 화롯가에 둘러 앉아 먹는데 이를 난로회라고 한다. 숯불구이는 추위를 막는 시절음식으로 이달부터 볼 수 있다.”
12세기 송나라 풍속이 조선에 전해져 친한 친구들끼리 모여 화로에 숯불을 피워놓고 둘러앉아서 갖은 양념을 한 쇠고기를 꼬치에 끼워 굽거나 번철이나 전골 혹은 석쇠에 올려놓고 구워 먹으며 시를 읊고 담소를 나누었던 것이다. ‘열하일기(熱河日記)’의 저자로 유명한 실학자 박지원이 난로회의 풍류를 기록으로 남겼다.
“눈 내리는 날, 김술부 공과 함께 화로를 마주하고 고기를 구워 먹으며 난로회를 했는데 방안이 연기로 후끈하고 파, 마늘, 고기 굽는 냄새가 온몸에 배었다. 공이 북쪽 창문으로 가서 부채를 부치며 맑고 시원한 곳이 있으니 신선이 사는 곳이 멀지 않다고 말했다.”
시점을 현대로 옮기고 화로 대신 다른 조리 기구를 동원한다면 지금도 크게 낯설지 않은 풍경이다. 숯불에 고기를 구워 먹는 난로회가 송나라에서 전해졌다고 하지만 자세히 따져보면 중국에 전해진 우리나라 풍속이 역수입된 것일 수도 있다. 숯불구이는 한반도에서 발달한 요리법이기 때문이다.
4세기 진나라 때 간보라는 사람이 쓴 ‘수신기(搜神記)’에 중원의 귀족과 부자들이 오랑캐 음식인 강자맥적(羌煮貊炙)을 즐긴다고 걱정하는 대목이 있다. 티베트의 강족이 먹는 삶은 양고기와 고구려 구성원인 맥족의 숯불구이가 중국에서 지나치게 유행한다고 걱정하는 모습이다.
참고로 설야멱을 숯불구이 혹은 불고기의 옛말로 아는 사람도 있지만 원래는 “눈 내리는 밤에 찾아 간다”는 뜻으로 송 태조 조광윤이 눈 내리는 밤, 친구이자 신하인 조보를 찾아가 숯불에 고기를 구워 먹으며 반란 진압을 의논했다는 고사에서 나온 말이다.
한반도의 숯불구이가 얼마나 유명했는지 원나라에서는 고려에서 쇠고기를 수입해 가는 것은 물론이고 숙수까지 초빙해 갔다. 최남선은 ‘조선상식문답’에서 고려의 임금이 원나라에 장가들기 시작한 이후부터 탐라(제주)의 쇠고기를 원나라로 보냈는데 고기 굽는 사람도 함께 갔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우리만큼 고기 구워 먹기를 즐기는 민족도 흔치는 않은 것 같다. 먼 옛날부터 숯불구이를 즐겨 먹는 전통이 면면히 이어져 내려왔으니 그 뿌리도 깊다.
<음식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