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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인자는 없고 죽은자만 있는 수원역 노숙소녀 살해사건

입력 | 2011-10-27 14:21:00

공범들 모두 무죄 석방..상소포기 홀로 4년6개월째 복역중




지난 2007년 5월 수원역에서 노숙하다가 타살된 채 발견된 김모 양(당시 15세) 사건은 결국 '죽은자만 있고 죽인자는 없는 영구미제사건'으로 남게 됐다.

그러나 관련 피고인 정모 씨(32)는 소위 '공범들'이 모두 무죄로 석방된 가운데 위증죄까지 추가돼 홀로 4년6개월째 힘겨운 수감생활을 하고 있다.

검찰과 경찰이 강압수사에 의한 허위자백만으로 끼워 맞추기식 수사를 했기 때문이란 지적이다.

수원지법 형사항소2부(이은희 부장판사)는 27일 수원역 노숙소녀 살해사건으로 징역 5년을 선고받고 구속 수감 중 법정에서 위증했다는 이유로 또다시 징역 6월을 선고받은 정씨에게 일부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노숙소녀 살해사건의 범행 동기와 과정, 증거, 국과수 부검결과, 공범들의 무죄석방 등을 놓고 볼 때 피고인이 노숙소녀를 살해하지 않았다고 인정할 수 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따라서 "자신은 (김양을) 살해하지 않았다는 정씨의 법정진술은 유죄로 인정할 수 없다"며 "다만 또 다른 김모 씨(여·당시 25세) 폭행사건에 대한 증언이 허위여서 이 부분만 유죄로 인정한다"며 형량을 징역 2월로 낮췄다.

소위 공범이 모두 무죄로 풀려난 가운데 정씨만 이처럼 꼬인 것은 지난 200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해 5월 17일 새벽 수원의 한 고등학교 화단에서 노숙자 김양이 살해된 채 발견되자 경찰은 수원역에서 노숙을 하던 정씨와 강모 씨(32) 등 2명을 유력한 용의자로 보고 검거해 자백을 받아냈다.

정신장애를 앓고 있는 정씨는 그해 12월 고등법원에서 징역 5년을 선고받자 상소를 포기해 형이 확정됐다.

검찰은 그러나 이듬해 1월 김양 살해범으로 가출청소년 최모 군(당시 18세) 등 5명을 붙잡았다.

최군 등은 친구가 잃어버린 2만원을 되찾겠다며 김양을 의심한 나머지 야밤에 인근 고등학교로 끌고 가 정씨와 함께 폭행해 숨지게 했다는 것이다.

당시 검찰은 다른 사건으로 수감 중인 최군의 동료 소년수로부터 제보를 받아 재수사를 벌인 끝에 이들의 범행을 밝혀냈다고 밝혔다.

정씨는 그해 4월 최군 등 4명에 대한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 "자신은 물론 최군 등도 김양 사망과 아무런 관련이 없고 당시 수원역에서 함께 있었다"고 증언했다.


최군 등은 그해 7월 1심에서 징역 2~4년을 선고받았고 정씨는 위증을 했다는 이유로 추가로 기소돼 그해 9월 징역 6월을 덤으로 받았다.

그러나 최군 등은 이듬해 1월 서울고등법원에 이어 그해 7월 대법원에서 무죄를 선고받고 풀려났다.

정씨의 변호인인 박준영 변호사는 "한 사건에 대한 두번의 수사가 모두 잘못돼 진범은 잡지 못한채 노숙청소년들은 1년가량, 정씨는 4년반 가량 억울한 옥살이를 하고 있다"며 "재판도중 사람을 죽이지 않았다고 양심에 호소한 발언을 검찰이 위증으로 기소한 것은 명백한 공권력 남용"이라고 말했다.

박 변호사는 "사람이 죽이지 않았다는 증언이 위증이 아니라고 법원이 판단한 만큼 검찰은 즉시 형집행정지를 통해 정씨를 석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씨 변호인은 지난해 서울고등법원에 정씨 폭행치사사건에 대한 재심을 청구했으나 법원은 "번복진술은 새로운 증거로 볼 수 없다"는 대법원 판례를 들어 기각했다. 변호인은 지난 7월 대법원에 재항고했다.

디지털뉴스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