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남매에 시동생 셋까지 키우신 우리 어머니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어머니는 칠남매를 낳아 키우셨다. 어머니는 당신 자식뿐만 아니라 나보다 나이가 어린 시동생 셋까지 돌봤다. 한 집에서 아이 열 명을 키운 셈이다. 유아원을 방불케 하는 대식구였다. 한창 자랄 나이에 잘 먹어야 한다며 고기 대신 두부라도 많이 먹인다고 콩을 갈아 두부를 상에 올려 주신 어머니는 무겁고 둔탁한 맷돌을 자주 가셨다. 어린 나이긴 하지만 어머니가 돌리는 맷돌 소리가 좋다고 옆에 앉아서 장단을 맞췄던 나의 철없던 모습이 어머니의 눈에는 천진난만하게만 보였을까. 나이가 들어 생각하니 부끄럽기 한이 없다.
어머니는 그런 자식이라도 옆에 있으니 힘 드는 줄 몰랐다고 하신다. 그래서 아무리 못난 자식도 어머니 품에 안기면 순한 양이 되는가 보다. 많은 식구들을 뒷바라지 하면서 살아오셨지만 늘 당신의 복으로 생각하신 어머니의 모습은 천사였다. 당신이 못 배웠기에 자식은 꼭 가르쳐야 한다는 일념으로 농한기만 되면 산약초를 캐서 팔아 학비에 보태면서 자식의 눈과 귀를 열어주신 어머니의 위대한 힘을 무엇에 비교할 수 있을까.
바위틈에서 자라는 소나무를 가리키며 다른 나무보다 열악한 환경이지만 주변을 탓하지 않고 꿋꿋하게 자라니 더 아름다워 보인다고 이야기하시던 어머니는 배움은 없었지만 오랜 경험으로 습득한 자연의 이치를 어린 나에게 하나하나 일러주신 것이다.
그렇다. 산은 모든 생명체의 근원이자 보금자리다. 30여 년간 산림 관련 일을 하면서 가끔 어머니와 산속에서 새 소리와 바람 소리를 들으면서 나누던 이야기를 회상해 본다. 이제 나도 산속에 들어가면 편안함을 느끼니 어머니가 말씀하시던 그 경지에 이른 것 같다.
내가 성장하는 데 등불이 되었던 어머니는 꽃다운 열여덟 살에 넉넉지 않은 한 농촌 집안으로 시집오셨다. 자식들 뒷바라지에 한평생을 보내신 어머니의 삶은 가시고기 같은 삶이었다. 고된 삶에 아파도 누울 시간이 없었다던 어머니가 수년 전 뇌경색으로 병석에 누우셨다. 불행 중 다행으로 조금은 회복됐지만 거동이 어렵다. 나를 키우시던 어머니의 사랑을 생각하면 옆에서 간호를 해야 작은 도리라도 하는 것일 텐데 그렇게 못하니 마음 아프다. 병상에 누워 계시더라도 더 악화되지 않아서, 어머니를 계속 볼 수 있다는 것에 만족해야 한다. ‘생명이 있어 먹을 수 있는 힘만 있어도 하느님의 축복’이라는 성경 구절이 생각난다. 생명은 실낱같이 이어져도 고귀한 것이다. 어머니 병환을 지켜보는 불효자의 마음이다. 오늘도 나는 멀리 타향에서 밤하늘에 밝게 빛나는 북두칠성을 바라보며 고향을 향해 어머니의 쾌유를 빌며 기도한다. 어머니가 병석에서 일어나시는 날 따뜻한 밥 한 상 차려 드릴 수 있는 기회를 달라고.
변광옥 국립산림과학원 난대산림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