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상대사 향한 선묘의 사랑 경내 곳곳에
○ 당나라 여인의 이루지 못한 사랑
부석사의 이름에 들어있는 ‘부석(浮石)’은 글자 그대로 ‘뜬 돌’이다. 부석사 창건 설화는 신라시대 의상대사가 당나라로 유학 가 만난 선묘란 아가씨의 짝사랑으로부터 시작된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선묘는 의상을 지켜주는 수호신이 되겠다며 바다에 몸을 던졌다.
신라로 돌아온 의상은 왕명을 받고 영주 봉황산 자락에 절을 지으려 한다. 하지만 그곳 사람들의 방해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다. 이때 수호신으로 의상을 따르던 선묘가 바위를 공중에 들어 올려 겁을 주어 그들을 굴복시킨다. 그제야 비로소 의상은 부석사를 창건할 수 있었다.
○ 무량수전 아래에 깃든 석룡
이번 스케치 여행은 가족과 함께했다. 네 살짜리 딸아이도 동행했다. 부석과 무량수전에 대해 이야기해 주고 싶었지만, 아이가 아직 이해할 수 없는 나이라 안타까웠다.
무량수전 기둥을 만져보던 아이가 말한다. “나무! 나무!”
범종루에서 안양루 쪽으로 올라가는 계단.
내가 부석사 절경 중 하나인 범종루 아래서 스케치를 하는 동안 아이는 내 주변을 서성였다. “지루하면 엄마한테 가 있을래?” 아이가 쪼르르 계단을 올라 사라졌다.
전설에 따르면 선묘는 석룡(石龍)으로 변해 무량수전 아래로 들어갔다고 한다. 실제로 어느 학술조사단이 부석사 아래에 기다란 돌이 있다는 것을 확인하기도 했다. 대체 사랑이 무엇이기에 선묘는 수백 년이 지나서도 이 자리를 떠나지 못하는 걸까.
문득 우리 아이가 부석사의 전설을 이해할 정도로 자라는 날, 아니 아이에게도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는 날, 그리고 아이가 엄마가 되었을 때도 다시 함께 부석사를 찾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월이 흘러 나와 아이의 모습은 변해갈지라도 수백 년 무량수전은 변함없이 그대로이겠지. 그렇게 인생의 한 계단 한 계단에서 이곳을 찾다 보면 나도, 아이도 언젠가 가장 높은 곳에 있는 극락정토의 세상, 무량수전에 오르는 계단의 의미를 조금이라도 깨달을 날이 오지 않을까.
그림자가 길어지기 시작했다. 모름지기 사물의 요철(凹凸)은 환하게 내리쬐는 한낮의 태양 아래서가 아니라 그림자에 굴곡이 생기는 아침저녁 햇살 속에서 보라고 했다. 범종루 기둥에 맺힌 빛은 부석사 곳곳에 낮엔 없었던 새로운 그림들을 그려내고 있었다.
석등에 새겨진 연꽃 향기가 음영을 타고 가람 안을 진동한다. 아이는 연신 마당과 계단을 오가며 분주하다. 사뿐 발걸음을 움직이는 아이의 그림자는 의상을 따르는 선묘인 듯 한 치의 군더더기도 없이 가지런하다.
이장희 일러스트레이터 www.tthat.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