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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호택 칼럼]‘레이디 가가’와 겨루는 소녀시대

입력 | 2011-10-30 20:00:00


황호택 논설실장

소녀시대 9명의 얼굴을 보면 누가 누군지 분간이 잘 안 된다. 한국 여성들이 언제부터인지 두 눈이 동그랗게 크고 모두 쌍꺼풀을 깜박이고 콧날이 오뚝해졌다. 김수미 사미자 전원주는 쉽게 구별되는데 요즘 뜨는 걸그룹 멤버들은 닮은꼴로 예쁘다. 어찌 됐든 예쁜 얼굴과 늘씬한 S라인도 한국의 경쟁력이거늘 공연한 트집을 잡을 생각은 없다. 프랑스 파리를 흔들어놓았던 소녀시대는 미국 뉴욕 매디슨스퀘어가든에 진출해 레이디 가가, 브리트니 스피어스 같은 미국 톱 가수들의 반열에 올랐다는 평가를 받았다.

매디슨스퀘어가든은 세계적인 팝 아티스트로 인정받아야 설 수 있는 무대다. SM엔터테인먼트 소속 소녀시대 f(x) 보아 강타 동방신기 슈퍼주니어 샤이니의 공연을 보려고 멀리 캐나다 퀘벡에서 온 소녀는 “우리나라에는 저런 가수들이 없다”며 열광했다. 미국 일간신문 뉴욕데일리뉴스는 ‘한국 아이돌 그룹은 세련되고 깔끔하고 섹슈얼 이미지를 덜 풍긴다’며 ‘프리마돈나처럼 도도하지 않고 팬들에게 겸손하고 친절하다’는 칭찬을 곁들였다. 소녀시대의 ‘더 보이즈(The Boys)’ 뮤직비디오는 유튜브에 공개한 지 열흘 만에 조회수 1400만 건을 돌파했다. “세상을 이끄는 저 멋진 여자들 여기 모여라…전 세계가 주목해”라는 랩은 자신들의 이야기 같다.

초신성 입대 전 日공연 눈물바다

나는 2주 전 일본 도쿄 인근 사이타마의 슈퍼아레나 경기장에서 초신성의 팬미팅 공연을 관람했다. 10월 25일 군에 입대한 초신성 리더 윤학이 이별의 눈물을 흘릴 때 체육관 2만 석을 가득 메운 여성 팬들이 함께 울었다. 일본 전국에서 15회에 걸쳐 공연한 초신성 팬미팅은 15만 원짜리 표가 전회 전석 매진되는 기록을 세웠다. 일본 산케이신문이 발행하는 한류 주간지 한펀(韓Fun) 24호는 초신성을 커버스토리로 다루고 배용준과 동방신기의 기사로 지면을 채웠다. 일본국가주의 성향의 산케이신문 계열사인 후지TV는 한류드라마와 케이팝을 집중 방영해 반(反)한류 시위대의 표적이 되기도 한다.

윤학은 한국과 일본에서 정체성 혼란을 겪는 가수다. 일본에서는 극성팬들이 숙소와 식당까지 따라붙을 정도지만 김포공항에 내리면 알아보는 사람이 별로 없다. 그가 출연하는 NHK의 ‘TV로 한글강좌’에서 한국어를 배운 여성 팬들은 한국어로 팬레터를 쓴다. 윤학이 머무는 호텔 방에는 종이로 접은 용과 학, 앨범, 다이어리 그리고 아이패드 의류 선글라스 초콜릿 같은 소녀 팬들의 선물이 가득하다. 일본 남자들은 규격화 분자화돼 멋이 없다는 말을 듣는다. 일본 소녀들은 현실에서 이룰 수 없는 사랑을 한류 스타를 통해 대리만족하고 있는 것 같다.

대만에서는 슈퍼주니어의 ‘미인아’와 2PM의 ‘핸즈업’이 음악사이트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대만 소녀들은 2PM이 들렀던 타이베이의 레스토랑 호텔 햄버거집을 성지 순례하듯 찾아다닌다.

김종진 제이제이와피디들 대표는 “SM엔터테인먼트의 이수만 대표가 H.O.T.의 2000년 베이징 공연을 성공시킨 후 케이팝의 해외진출에 10여 년 공을 들였다”며 “작년부터 유럽과 미국 남미에서도 공연 요청이 들어오면서 한류음악은 세계적 현상으로 자리 잡았다”고 말했다. 12월 방송을 시작하는 종합편성채널TV 채널A의 이문혁 PD는 “이수만 씨가 한류음악 세계화의 최대 공로자이고 박진영 양현석 씨도 후발주자로서 힘을 보탰다”고 평가했다. 유튜브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도움도 컸다. SNS를 통해 케이팝의 소문이 퍼지고 유튜브로 감상하는 세상이 되면서 대중문화의 국경선이 희미해진 것이다.

한국에서 아이돌을 만들기 위해 기획사들은 엄격한 오디션을 거쳐 용모와 가창력을 갖춘 10대들을 선발한다. 이들은 평균 2, 3년 길게는 4, 5년간 하루 10여 시간씩 노래와 춤 그리고 무대 매너를 익힌다. 요즘에는 영어 일본어 중국어 같은 외국어도 필수과목이 됐다. 일본 아이치대를 졸업한 윤학은 “일본 가수들에겐 연습생 과정이 없다. 한국 아이돌은 독기를 품고 연습해 팬들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하는 퍼포먼스그룹으로 성장한다”고 성공 비결을 분석했다.

케이팝이 한국 브랜드 가치 높인다

해외시장에서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극복하자면 대한민국이라는 국가 브랜드의 가치를 높여야 한다. 케이팝, 한류 드라마와 영화는 수출에 크게 의존하는 한국경제의 효자가 되고 있다. 최근 세계 여러 나라에서 한국 의류와 화장품, 휴대전화를 비롯한 전자제품이 불티나게 팔리는 데는 한류가 톡톡히 기여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한류의 발원지를 찾아다니는 관광객도 날로 늘어나고 있다. 연말부터는 지상파 방송의 독과점을 깨고 종합편성채널 4개가 생겨 한류의 발신지가 확대된다. 필자 같은 쉰 세대도 시드는 인생을 한탄할 것이 아니라 신세대의 역동적인 춤과 노래로 가끔 기(氣)를 돋울 일이다.

황호택 논설실장 hthw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