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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디컬 드림팀]세브란스병원 뇌졸중센터

입력 | 2011-10-31 03:00:00

뇌중풍은 시간단축이 치료 좌우
2002년 집중치료실 국내 첫 도입




세브란스병원 뇌졸중센터 팀장인 허지회 교수가 환자의 뇌 상태를 찍은 MRI 사진을 보면서 팀원들과 회의하고 있다. 허 교수팀은 뇌중풍(뇌졸중) 치료 및 관리 매뉴얼을 만드는 데 선구적 역할을 했다고 평가받는다. 세브란스병원 제공

김순례(가명·74·여) 씨는 10일 집에서 TV를 보다 갑자기 심한 어지럼증을 호소하며 의식을 잃었다. 가족의 신고로 오후 5시 20분경 119 구급차를 타고 30분 만에 세브란스병원 응급실에 도착했다. 응급실 도착 당시 김 씨는 희미하게나마 의식은 회복했으나 말을 할 수 없었으며 오른쪽 팔다리를 전혀 움직일 수 없는 상태였다.

의료진은 김 씨를 뇌중풍(뇌졸중)으로 의심했다. 그 즉시 김 씨는 병원의 전자처방기록상에 뇌중풍 응급환자를 뜻하는 주황색 ‘BEST’ 마크가 뜨며 진료 최우선 환자로 구분됐다. BEST란 ‘Brain salvage through Emergent Stroke Treatment(응급 뇌중풍 치료를 통해 뇌를 구하자)’의 약자. BEST로 등록된 뇌중풍 환자는 컴퓨터단층촬영(CT) 검사나 혈전용해 치료 등을 최우선으로 받을 수 있다. 영상의학과, 신경과, 진단검사의학과 등 뇌중풍에 관련된 모든 과의 단말기에 BEST로 동시 등록되기 때문이다.

2004년부터 도입한 BEST 프로그램으로 현재 국내 평균 79.5분보다 훨씬 빠른, 응급실 도착 후 42분 만에 막힌 뇌혈관을 뚫기 위한 혈전용해제가 투여되고 있다.

○ BEST 프로그램 매뉴얼 국내 처음 시작

“예전엔 환자가 응급실에 오면 의사가 일일이 전화를 해서 CT를 예약하고 신경과 의사에게도 연락하고, 필요시 수술실도 알아봐야 했죠. 그러다 보니 환자는 기다리고 있는데, 의사는 전화하는 데만 시간을 빼앗겼어요. 전산을 잘 활용하면 시간을 벌 수 있겠다는 생각에 BEST 프로그램을 만들게 됐습니다.”

세브란스병원 뇌졸중센터팀장인 허지회 교수는 지금도 팀원들과 2주일에 한 번 이상 좀 더 효율적인 환자 진료를 위한 브레인스토밍을 한다. 이야기를 하면서 아이디어를 내고, 이를 취합해 즉시 시행하는 것이다.

허 교수는 “여러 과가 모여 한 팀이 되다 보니 힘든 점도 있었다”며 “하지만 환자를 최대한 빨리 치료하는 걸 최우선으로 한다는 원칙에서 각 팀이 조금씩 양보해 모든 문제를 해결했다”고 말했다.

BEST 프로그램도 그렇게 만들어졌다. 매뉴얼은 지속적으로 업그레이드해, 이젠 책 한 권 분량이 됐다. 이 매뉴얼은 서울아산병원, 삼성서울병원 등 다른 유명 병원에서도 잇달아 벤치마킹할 정도다. 현재 BEST 프로그램을 도입한 국내 10개 대형병원의 성과를 보면 막힌 혈전용해 치료까지 걸리는 시간이 평균 72분에서 57분으로 15분 줄었다. 치료시간이 빨라짐에 따라 치료를 받을 수 있게 된 환자도 70%나 증가했다. 김 씨의 경우 BEST 프로그램 덕분에 응급실에 도착한 지 불과 7분 만에 바로 뇌 CT 검사를 받았고, 24분 만에 혈전용해제를 투여받았다.

○ 동시에 의료진이 움직여 환자 치료

세브란스병원 뇌졸중센터는 뇌중풍 환자의 응급실 도착에서부터 퇴원까지의 전문치료를 위해 2007년 만들어졌다. 신경과, 신경외과, 재활의학과, 응급의학과, 영상의학과 및 간호국 등 진료부서는 물론이고 물리치료팀, 작업치료팀, 영양팀, 가정간호사업소, 진단검사의학 검사실, 의료정보실, 원무팀 등 각종 지원부서가 긴밀하게 협력한다. 의료진은 교수 13명을 포함해 300여 명에 이른다.

다른 병원보다 눈에 띄는 게 뇌졸중 집중치료실이다. 뇌졸중 집중치료실은 2002년 세브란스병원이 국내 처음으로 도입했다. 급성기 뇌중풍 환자들을 집중 관리하고 치료하는 병실이다. 이곳에서 환자는 금연 교육처럼 병의 원인이 된 생활습관을 고치는 교육도 받는다. 보호자에게도 뇌중풍 교육을 한다.

재활치료가 필요한 경우엔 입원 뒤 24시간 안에 재활의학과 전문의가 찾아와 환자에게 맞는 재활교육 프로그램을 짠다. 이 모든 일이 동시에 이뤄진다.

이런 치료의 우수성을 인정받아 지난해엔 국내 최초로 JCI 뇌중풍 임상치료 프로그램 인증을 받았다. 이 인증은 미국을 빼면 전 세계에서 6번째다. 세브란스 뇌졸중센터팀은 정맥을 통한 혈전용해 치료에 실패한 환자에게 동맥에 투여하는 방법을 처음 시도해 효과를 거뒀다. 혈전용해 치료 후 혈전이 다시 생기는 환자를 위한 새 치료법을 개발하여 로이터통신 등 외국 언론에 소개되기도 했다.

○ 잘하는 병원 찾지 말고 가까운 병원으로 가라

뇌중풍 환자는 빨리 치료를 받으면 일상생활로 돌아올 가능성이 높아진다. 문제는 그 시간대를 놓치는 것이다. 대개 마비 등의 증상이 생긴 뒤 3시간 안에 혈전용해술 치료를 받으면 정상으로 돌아올 가능성이 그렇지 않을 때보다 2.8배 높아진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2010년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급성 뇌중풍 환자 중 불과 7.9%만이 이런 치료를 받는다며 허 교수는 아쉬워했다.

세브란스병원이 BEST 프로그램을 도입하는 등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노력하는 이유는 뇌중풍이 사망률과 장애발생률이 가장 높은 질환이기 때문이다. 특히 혈전용해 치료가 필요한 급성기 뇌경색 환자에게 ‘시간’은 생사와 장애 정도를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요소다.

허 교수는 “뇌중풍은 시간이 생명이기에 증상이 나타나면 멀리 있는 유명 병원을 찾기보다 신경과 의사가 있는 가까운 병원에서 빨리 혈전용해 치료를 받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진한 기자·의사 likeda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