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대지진 7개월… 일본 미술은]지역공동체의 중심으로 거듭나는 ‘가나자와 21세기 미술관’

입력 | 2011-11-01 03:00:00

모든 일상은 미술관으로 통한다




유리벽을 통해 안과 밖이 연결된 개방성이 특징인 가나자와 21세기미술관.(위) 시민 참여로 완성된 피터 맥도날드의 회화설치작품 ‘디스코’에서 휴식중인 관객들.(아래)

미술관 외벽은 통유리로 돼 있어 안에서 밖이, 밖에서 안이 훤히 들여다보인다. 건물을 빙 둘러싼 잔디밭을 산책하던 시민들이 내부에 있는 작품이 궁금한지 안을 기웃거린다. 동전처럼 둥글납작한 건물엔 앞뒤가 없다. 동서남북에 출입구가 있어 어디서든 편히 드나든다. 안으로 들어서면 바깥 편엔 누구나 즐길 수 있는 공간이, 중심부엔 표를 구입해야 볼 수 있는 전시실이 자리 잡고 있다. 원통 속에 높이와 넓이가 제각각인 큐브들이 담긴 구조여서 전시실마다 다른 분위기를 자아낸다.

일본 이시카와 현 가나자와 시의 시청사 옆에 자리한 가나자와 21세기 미술관은 투명하고 경쾌한 공간이다. 건축가 세지마 가즈요와 니시자와 류에(건축사무소 SANAA)가 설계한 미술관은 2004년 개관 이래 국제적 명소로 떠올랐다. 두 사람은 2010년 ‘건축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프리츠커상을 수상했는데 당시 심사위원단이 선정 이유에서 가나자와미술관을 언급할 만큼 주목받는 곳이다.

○ 공원과 미술관이 만나다

가나자와21세기미술관은 미술관이 도시를 바꾸는 ‘빌바오 효과’의 사례로 꼽을 만 하다. 스페인 항구도시 빌바오에 들어선 구겐하임미술관이 도시의 경쟁력을 높인 것처럼 이 미술관이 생기면서 도시가 활력을 얻었다. 미술관의 오치아이 히로아키 홍보실장은 “미술관이 생기면서 가나자와는 전통과 역사의 도시란 낡은 이미지에서 새로운 이미지를 얻었다”며 “온천 가는 길에 잠시 들르던 도시에서 벗어나 관광객과 그들이 머무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지역경제도 활성화됐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변화의 일등공신은 건축디자인이 가진 힘이다. 두 건축가는 ‘지역사회에 열린 공원 같은 미술관’이란 개념 아래 교육 창조 소통 휴식이 함께하는 지역 광장을 만든 것. 유리벽 건물 자체가 요란하지 않으면서도 세련된 조형물로 밋밋한 마을에 생동감을 부여했다. 기능적으로 구획된 내부 전시실은 천장의 자연광, 빛의 뜰 등과 접목되면서 공간을 탐구하는 아기자기한 재미를 선사한다.

애니시 카푸어, 제임스 터렐, 올라푸르 엘리아손, 얀 파브르의 작품 등 소장품 목록도 알차다. 특히 실내수영장처럼 보이는 아르헨티나 작가 레안드로 에를리치의 ‘수영장’(2004년)은 인기가 높다. 강화유리에 물을 채운 수면을 경계삼아 지상과 지하에 있는 사람들은 서로를 신기하게 바라본다. 매년 3, 4회 열리는 기획전 역시 수준급이다. 6일까지 열리는 ‘내면의 목소리’전에선 일본 작가와 함께 김소라, 실파 굽타, 이이란 등 아시아 작가들의 작업을 볼 수 있었다.

○ 지역과 미술관이 만나다

일본 가나자와 시에 있는 가나자와 21세기미술관을 대표하는 작품 중 하나인 레안드로 에를리치의 ‘수영장’ 안에 관람객들이 모여 있다. 강화유리에 물을 넣은 수면을 경계선으로 삼아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모습을 표현한 작품이다. 고미석 기자 mskoh119@donga.com

21세기미술관은 외부에 자랑하거나 소수를 위한 공간이 아니라 모든 주민과 소통을 중시한 지역밀착형 공간이다. 애초부터 ‘미술관과 지역사회의 공생을 통해 새로운 가나자와의 매력과 활력을 창출해간다’는 목표를 세운 덕분이다. 큐레이터 요시오카 에미코 씨는 “상설전 기획전과 더불어 시민들이 현대미술과 친숙해질 수 있게 장기 미술프로젝트를 지속적으로 열고 있다”고 설명했다. 시민 참여로 선보인 영국 작가 피터 맥도널드의 ‘디스코’전에선 관객이 편하게 바닥에 앉거나 누워 화려한 벽면 회화 설치작업을 감상했다. 개방형 공간이란 특징은 전시장이 일찍 문 닫은 후에도 카페 등 공공 영역은 오후 10시까지 문을 연다는 점에서도 확인된다.

딱딱하고 권위적 문화공간이 아니라 지역주민에게 활짝 열려 있는 가나자와 21세기 미술관. 외관뿐 아니라 운영에 있어서도 ‘그들만의 잔치’가 아닌 ‘공동체의 중심’을 지향한 점이 돋보였다. 인구 45만 명을 헤아리는 작은 도시의 미술관에 연간 150만 명의 관람객이 찾아드는 까닭일 것이다. www.kanazawa21.jp

가나자와=고미석 기자 mskoh119@donga.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