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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 엘도라도행 로또 한장이면 된다

입력 | 2011-11-02 03:00:00

최금진 시인. 창비 제공


똥이다, 돼지다, 길몽(吉夢)이다. 생각만 하면 흐뭇한 미소가 절로 번진다. 가슴이 벌렁거린다. 영수증 쪼가리 같은 로또 한 장 샀지만 역시 꽝이다. 하지만 다음 주는 금세 온다. 위안이 된다.

눈앞에 퍼런 지폐가 우수수 쏟아지고 찬란한 황금빛에 눈이 부신다. 아 그곳은 엘도라도, 월급봉투로는 닿을 수 없는 그곳에 가기 위해 오늘도 티켓을 산다, 복권을 산다.

‘이달에 만나는 시’는 11월 추천작으로 최금진 시인(41)의 ‘황금을 찾아서’를 선정했다. 이 시는 지난달 나온 시집 ‘황금을 찾아서’(창비)에 실렸다. 시인 이건청, 김요일, 손택수, 이원, 장석주 씨가 추천에 참여했다.

최금진 시인은 “다다를 수 없는 허황된 꿈을 다룬 시”라고 했다.

“3년 전쯤 복권을 한창 많이 살 때 쓴 작품입니다.(웃음) 복권을 사는 것을 한탕주의나 배금주의로 바라보지는 않습니다. 서민들에게는 복권만이 신분 상승의 기회가 되는 게 현실이니까요. 가장 원하는 희망사항(복권 당첨)에 늘 속임을 당하게 되고, 속을 줄 알면서도 계속 사게 되니까 더 절망스러운 겁니다.”

1997년 강원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시인은 2007년 낸 첫 시집 ‘새들의 역사’로 오장환문학상을 받았다. 그가 면도날처럼 도려낸 현실은 섬뜩하고 냉혹하다.

“현실을 낙천적으로 혹은 비관적으로 바라보고 싶지 않아요. 우리가 사는 현실을 그냥 사실적으로 그려냈을 뿐입니다. 제가 부정적인 게 아니라 실제 세상이 그런 거죠.”

손택수 시인은 “최금진의 금광은 고통스럽다. 폐광 속에 묻어둔 채 그만 잊고 지내고 싶은 고통스러운 현실이 욱신욱신 일그러진 모습으로 육박해 들어온다. 그의 시를 통해 마주하는 당대의 자화상은 냉소와 비애가 뒤섞인 채로 무섭도록 치열한 리얼리즘을 선물한다”며 추천했다.

“팽팽한 긴장과 은유가 없어도, 최금진 시인이 시로 그려낸 그의 가계(家系)와 개인사(個人史) 속에 숨어 있는 몽환적인 연대기는 떠돌이 악사의 연주처럼 쓸쓸하면서도 따스하다. 밥 짓는 굴뚝의 잿빛 연기처럼 매캐하면서 침 돌게 하는 시집을 묶어낸 그에게 소주 한잔 따라주고 싶다”고 김요일 시인은 말했다.

장석주 시인의 추천평은 이렇다. “암울하고 절박한 언어의 전압이 높다. 편하게 읽히지 않는다. 다만 그의 시가 아버지와 만날 때 진정성의 깊이를 얻고 호흡이 안정되는 느낌이 든다.”

이건청 시인은 오정국 시인의 시집 ‘파묻힌 얼굴’을 꼽으며 “강한 시 정신으로 시적 대상의 근원까지 하강해 사물들을 다시 호명해 내고 있으며, 그렇게 발견된 새로운 사물들이 존재의 결핍을 메워주는 시적 성과를 보여준다”고 평했다. 이원 시인은 조동범 시인의 시집 ‘카니발’에 대해 “현실의 비극성을 아이러니를 통해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현실의 비극성을 벗어난 장면까지를 책임지고 보여준다”고 평했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