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총기사용 ‘3회 경고’ 매뉴얼 현실성 부족 지적에 즉각대응 새 기준 마련경찰의 현장판단 존중
경찰청이 1일 공개한 초안에 따르면 피의자가 흉기로 경찰관이나 시민을 공격하는 등 중대한 위협이 있는 상황에서 이를 멈추라고 경고할 시간적 여유가 없을 때 경고사격 없이도 권총을 쏠 수 있도록 했다. 경찰관을 급습하거나 타인의 생명·신체에 중대한 위험을 야기하는 범행이 눈앞에서 벌어지는 등 부득이한 상황에선 경고사격 없이 총기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한 현행 규정을 보다 구체화한 것이다. 또 경찰의 경고를 무시하고 도주하는 범인이 연쇄살인범 등 흉악범이어서 놓치면 추가범행을 할 것이 명백한 경우에도 바로 권총을 쏠 수 있다.
경찰 관계자는 “총을 쏠 수 있는 기준을 완화한 것은 아니고 기존의 기준을 좀 더 구체화한 것”이라며 “권총을 언제 어떻게 써야 할지에 대한 현장 경찰관들의 판단을 돕기 위해 매뉴얼을 정비 중”이라고 설명했다.
현행 총기 관련 규정을 보면 흉기를 든 피의자가 경찰관에게 3회 이상 경고를 받고도 계속 저항하면 총기를 사용하도록 돼 있다. 새 매뉴얼 초안에는 ‘3회 이상 경고’ 등 기계적인 기준을 적용하는 대신 현장 경찰관의 판단에 더 많은 권한을 부여해 치명적 위협이 있고 경고할 여건이 안 되면 총을 쏠 수 있게 했다. 또 피의자가 인질을 붙잡고 있어 경고사격이 더 큰 위해를 발생시킬 소지가 있거나 간첩 및 테러사건 등 은밀한 작전 수행 중에는 경고나 경고사격 없이도 총을 쏠 수 있다.
경찰관이 총기를 쓸 수 있는 단계도 세부적으로 명시됐다. 총기나 칼을 휴대한 자가 거리를 배회하거나 흉기를 갖고 있다고 의심할 만한 정황이 있을 때 경찰관은 권총의 안전장치를 풀어 언제든 쏠 수 있도록 준비하게 했다.
2단계로 피의자가 흉기를 들고 있는 상태에서 경찰의 경고에 저항하거나 피의자가 경찰관이나 시민에게 신체적 위협을 가하면 권총을 꺼낼 수 있다. 경찰관이 권총을 꺼내 피의자에게 3회 이상 경고를 했는데도 계속 흉기를 휘두르거나 피의자가 도주를 시도할 때 경찰은 3단계로 경고사격을 할 수 있다.
경고사격에도 불구하고 피의자가 흉기로 경찰관이나 시민의 생명에 치명적 위해를 가하려 하고 체포가 불가능하다고 판단될 때는 직접 총을 쏠 수 있다. 경고사격을 아랑곳하지 않고 도주하는 흉악범에게도 역시 총을 쏠 수 있다.
이 같은 내용의 초안에 대해 일선 경찰관들은 엇갈린 반응을 보인다. 서울 용산경찰서의 경위급 직원은 “현장에서 총을 쏘면 감찰조사를 받게 되는데 구체적 기준이 있으면 총을 왜 쐈는지 소명하는 게 수월해질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또 다른 경사급 직원은 “언제가 일반적 위협이고 언제가 치명적 위협인지는 결국 현장에서 경찰관이 판단해야 한다”며 “총을 쏘면 책임 추궁을 당하는 제도를 바꾸고 피의자 유족들의 민사소송에 대한 대비책 등이 마련되지 않으면 별로 달라질 게 없다”고 말했다.
신광영 기자 ne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