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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정성희]당뇨병 퇴치의 복음

입력 | 2011-11-02 03:00:00


영화 ‘아일랜드’는 인간에게 장기를 제공해 주거나 아기를 낳아주기 위해 존재하는 복제인간의 세계를 그렸다. 복제인간은 아직까지 할리우드 영화에나 등장하는 상상물이다. 현실에서 복제인간의 역할을 대신하는 것은 돼지다. 돼지는 사람과 장기의 크기가 비슷하고 사육이 쉬운 데다 번식이 빨라 이종(異種) 간 장기이식에 적합하다. 그렇다고 아무 돼지의 장기나 이식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장기 이식용으로 개발된 돼지, 즉 무균(無菌) 돼지여야 한다.

▷무균 돼지의 췌도(췌장섬)를 당뇨병에 걸린 원숭이에게 안정적으로 이식하는 데 성공했다. 서울대 의대 박성회 교수팀이 당뇨병에 걸린 원숭이에게 돼지 췌도를 이식하면서 새로 개발한 면역조절항체(MD-3)를 투여했더니 거부반응 없이 원숭이의 혈당이 자동 조절됐다. 인슐린 분비체계가 고장 난 당뇨병 환자들은 평생 인슐린을 투여 받는다. 이들에게 돼지 췌도를 이식하면 당뇨병을 완치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 연구의 핵심은 MD-3라는 면역제제다. 세계 의학계에서 돼지 췌도를 이식하는 방안이 계속 시도됐으나 면역 거부반응 때문에 번번이 실패로 돌아갔다. 사람의 면역유전자를 넣은 형질전환 돼지를 이용한 연구도 부작용 때문에 실패했다. 박 교수팀이 개발한 면역조절항체는 돼지 세포에 대해 거부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이번 시험은 당뇨병 원숭이를 대상으로 한 것이지만 연구 성과는 당뇨병과 원숭이에 국한되지는 않는다. 이종 간이든 동종 간이든 면역거부의 문제점을 단칼에 해결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이식 환자들이 평생 먹어야 하는 면역억제제도 먹을 필요가 없어진다. 당뇨병 환자들에게 복음이 아닐 수 없다.

▷원숭이를 대상으로 한 시험에 성공했지만 상용화하려면 장기적 안전성 확보를 위해 사람을 대상으로 임상시험을 거쳐야 한다. 돼지는 인간과 오랫동안 어울려 살아왔기 때문에 돼지에게 있는 모든 바이러스가 인간에게도 있다고 볼 수 있지만 현재의 진단기술로 발견하지 못한 돼지 바이러스나 세균이 돼지 췌도에 숨어 있다가 이식을 통해 사람에게 옮겨올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돼지 장기를 사람에게 이식하는 데 따른 윤리 논란이 벌어질 수도 있다. 섣불리 환호하기에는 아직도 갈 길이 많이 남아 있다.

정성희 논설위원 shch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