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류센터 ‘타당성 없음’에 건립 차질… 공동구매 통한 가격 경쟁력 확보 난항
서울 동작구에 있는 한 나들가게. 정부는 지난해부터 ‘나들가게’를 키운다며 구멍가게들의 간판을 교체하고 환경을 개선하는 데 예산을 투입하고 있지만 소비자와 나들가게 주인들은 달라진 점을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나들가게는 정부가 기존 구멍가게를 대기업슈퍼마켓(SSM)과 경쟁할 수 있는 대항마로 키우겠다며 내세운 브랜드이다. 정부는 골목상권을 보호하기 위해 △간판 교체 및 판매시점관리기기(POS) 무상 지원 △리모델링 등 시설 개선자금 대출 지원 △경영개선 상담 등을 제공하고 있다. 하지만 대책의 핵심인 통합물류센터 건립이 예산 확보의 벽에 부닥치면서 제 기능을 못한 채 표류하고 있다.
○ 기획재정부, 물류센터 건립 “경제성 낮아”
이에 따라 물류센터 건립은 당장은 추진이 어렵게 됐다. 예비 타당성 조사를 통과하지 못하면 사회 및 경제위기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 불가피한 사업을 제외하고는 통상적으로 예산 확보가 안 되는 게 일반적이다. 다만, 국회 예산심의 과정에서 국회의원들이 예산을 반영할 수는 있다.
이에 앞서 중소기업청은 지난해 5월 200개 개점을 시작으로 나들가게 사업을 시작하면서 전국 20여 곳에 물류센터를 지어 공동구매를 추진하고, 소비자가격을 낮춰 나들가게의 가격경쟁력을 높이겠다고 발표했다. 현재 5300여 개인 점포는 내년까지 1만 개로 늘릴 계획이다. 올해 215억 원이던 나들가게 육성지원 예산도 내년에 334억 원으로 증액됐으며 추가로 금융지원 4300억 원, 소상공인 경쟁력 제고 415억 원 등 총 7536억 원이 소상공인과 전통시장 자생력 확보를 위한 예산으로 편성됐다.
○ 사업 표류에 ‘뿔난’ 나들가게 주인들
물류센터 건립계획이 좌초될 위기에 처하면서 나들가게 주인들의 불만이 커지고 있다. 서울 동작구의 한 나들가게 주인 김모 씨(49·여)는 “소비자에게 직접적인 혜택이 있어야 나들가게를 찾아올 것 아니냐”며 “가격경쟁력의 기반이 되는 물류센터가 없으면 나들가게 프로젝트는 공염불이며 SSM과의 일전은 이미 진 싸움”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사업을 맡고 있는 중소기업청도 난감해졌다. 경제성 분석도 하지 않고 성급하게 사업을 추진했다는 따가운 비판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중소기업청 관계자는 “가격경쟁력을 갖추는 것은 공동구매가 아닌 소프트웨어적인 경영지원으로도 가능하다”며 “나들가게로 변신한 뒤 매출이 올라간 우수 점포 사례가 많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나들가게가 제대로 자리 잡기 위해선 물류센터 건립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많다.
박주영 숭실대 교수(벤처중소기업학)는 “나들가게 업주들의 협상력을 강화하고, 매대의 상품 구성력을 높이기 위해서라도 물류센터는 반드시 필요하다”라며 “물류센터가 없다는 것은 손발을 묶고 SSM과 경쟁하라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강조했다.
황형준 기자 constant2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