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서울대병원에서 열린 박영석 대장, 신동민 강기석 대원의 합동 영결식에서 강 대원의 누나와 조카가 오열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안나푸르나 남벽에서 실종된 박영석 대장과 신동민 강기석 대원의 합동 영결식이 3일 서울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병원에서 열렸다. 이인정 대한산악연맹회장은 조사를 통해 “이들이 남긴 뜨거운 열정의 메아리는 역사로 기억될 것”이라며 실종자들을 기렸다. 박 대장의 모교인 동국대 김희옥 총장은 “박 대장이 추구한 높이는 물리적 높이가 아니라 인류정신의 높이였다”며 “대자연과 하나 되는 경지, 백전불굴의 정신이 박영석 정신이었다”고 추도했다.
이날 영결식에는 유인촌 대통령실 문화특별보좌관, 박 대장과 친분이 두터웠던 만화가 허영만 씨와 엄홍길 씨를 비롯한 많은 산악인이 참석했다. “산을 제일로 사랑했던 그 악우(岳友)여. 어이해 눈보라 속에 사라졌나 그 친구, 그 악우여….” 산악인들이 ‘악우가’를 부르는 동안 식장엔 흐느낌이 가득했다.
이원홍 기자 bluesky@donga.com
▼ 본보 기자들이 지켜본 박영석 ▼
박 대장의 원정대는 상명하복의 질서가 뚜렷했다. 그는 카리스마 넘치는 지도자였다. 하지만 엄한 겉모습 뒤로 일일이 대원들을 챙기는 ‘따뜻한 맏형’이었다.
김 기자는 “내가 3900m 높이의 베이스캠프에서 고산병에 걸려 식음을 전폐했을 때 취사 담당이었던 신동민 대원에게 ‘식욕 좀 돋우게 맛있는 저녁을 준비하라’고 말하는 등 마음이 따뜻한 대장이었다”고 회상했다.
김 기자는 “지친 대원들에게 먹이기 위해 한국에서 가져온 30만 원짜리 6년산 홍삼을 배낭에서 주섬주섬 꺼내 박 대장이 손수 달이곤 했다. 그 모습이 눈에 선하다”고 했다. 김 기자는 “원정 지역에서 무언가를 끓이는 냄비는 모두 뚜껑을 열어보고, 생전 처음 보는 음식이라면 꼭 맛을 봐야 직성이 풀리는 등 호기심이 왕성했다”고 기억했다.
황 기자는 “처음에는 거만하고 무례한 사람처럼 보였지만 볼수록 잔정이 많았다”고 했다. 동행 취재가 확정되자 박 대장은 “대원이니까 이제 말 놔도 되지”라고 말해 기자를 잠시 당황하게 만들었다.
황 기자는 한 달 반 동안 해발 5364m의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에서 고립된 생활을 하면서 단것이 너무 먹고 싶었다. 밤에 몰래 비품 텐트에서 500mL 콜라 한 병을 꺼내 먹었다가 이튿날 박 대장에게 호되게 혼났다. 대원의 몫을 기자가 축냈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며칠 뒤 박 대장은 콜라와 사이다를 비롯한 탄산음료를 한 무더기 구입해 줬다.
희망원정대를 동행 취재했던 한우신 기자는 “박 대장은 대학생들이 ‘힘들다’ ‘아프다’고 말하면 감싸 주기보다는 더 호되게 꾸짖는다. 학생들은 원정 중에 박 대장의 독선적 태도에 자주 불만을 토로했지만 끝난 다음에는 박 대장을 진정으로 인정하고 따랐다”고 했다. 한 기자는 원정이 끝난 뒤 박 대장이 대학생들에게 남긴 말이 아직까지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여러분, 많이 비웠습니까. 이제 그 속에 꿈을 채워 넣으세요.”
정리=황인찬 기자 hic@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