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중국선 생선회와 함께 먹어
감초(甘草)는 한약을 제조할 때 흔히 부수적으로 집어넣는 약재다. ‘동의보감’에 감초는 아홉 가지 흙의 기운을 받았기 때문에 72가지의 광물성 약재와 1200가지의 식물성 약초를 비롯해서 모든 약을 조화시키는 효과가 있다고 했다.
약방에 감초가 있다면 주방에도 감초와 같은 재료가 없을 수 없으니 옛날 사람들은 여기에 해당하는 주방의 식재료가 파라고 했다. 그래서 파는 별명이 화사초(和事草)다.
화사초라는 별명이나 채소 중의 맏형이라는 말에서 파가 진작부터 양념으로 널리 쓰였음을 짐작할 수 있는데 고대 중국의 예법을 적은 ‘예기(禮記)’에 파가 여러 차례 나온다.
예기 내칙(內則)편에 회를 먹을 때는 파를 곁들여 먹는다고 했으니 지금 고기를 먹을 때 파무침을 곁들여 먹는 것과 비슷하다. 예기 소의(少儀)편에서는 군자를 맞이해 파와 마늘을 준비할 때는 양쪽 끝을 가지런히 다듬어 놓는다고 했다. 소중한 손님을 맞이할 때 사소한 반찬 하나라도 정성껏 준비해야 한다는 뜻이다.
파는 주로 양념으로 쓰지만 국으로도 많이 끓여 먹었다. 6세기의 농업서인 ‘제민요술’에 된장을 풀고 파뿌리를 넣어 국을 끓인다고 했으니 파 계란국의 원형을 여기서 찾을 수 있다.
송나라 때 주자가 사위인 채침의 집을 찾아갔다. 식사 때가 되어 딸이 파를 넣어 끓인 국에 보리밥을 내놓으며 밥상이 조촐하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러자 주자가 “보리밥과 팟국은 서로 어울리니, 파는 단전의 힘을 길러주고 보리밥은 허기를 면하게 해주네”라며 시를 지어 딸을 위로한다. 이후 팟국과 보리밥은 선비의 청빈을 상징하는 표상이 됐다.
참고로 동양의 주방에서 파는 약방의 감초처럼 빼놓을 수 없는 양념이다. 하지만 서양에서는 예전 우리가 먹는 종류의 파는 먹지 않았다. 양파가 근대에 동양으로 전파된 것처럼 대파와 쪽파도 근세에 서양으로 전해졌다. 이 때문에 서양에서는 파를 동양에서 왔다고 중국 양파(chinese onion)라고 한다.
<음식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