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재권력 견제 앞장섰던 강직한 언론인
3일 권오기 전 동아일보 사장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에 조문객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동아일보 정치부 기자 시절 권력 견제의 일선에 섰던 고인은 그로 인해 정권의 직접적인 물리적 폭력을 경험하기도 했다. 동아일보 1966년 3월 25일자부터 박정희 대통령의 독단적 통치 행태를 비판하는 시리즈 ‘독주(獨走)’가 게재됐다. 그 시리즈의 하나로 ‘소신은 만능인가’라는 제목의 기사를 썼던 최영철 기자가 같은 해 4월 25일 저녁 귀가하던 중 신원 미상의 청년 두 명에게 폭행을 당했고, 이어 당시 정치부 차장이었던 고인이 7월 20일 귀가 도중 다시 괴한들에게 폭행을 당한 것이다.
동아일보는 잇따른 기자 폭행 사건에도 불구하고 12월 31일자 송년 사설에서 “벌거벗은 힘이 도의를 이기는 정치, 돈의 액(額)이 법률을 비웃는 경제, 말보다 주먹이 앞서는 사회, 이 모두가 폭력의 온상이 아닌가”라며 정론직필의 의지를 꺾지 않았다.
1993년 동아일보 사장에 취임한 고인은 그해 4월 1일부터 조간 체제로 이행하는 동아일보의 변화를 선두에서 이끌었다. 정보 중심으로 지면 내용을 쇄신해 당시 화두였던 국제화 정보화 생활화 지방화 시대에 발맞췄다.
통일 문제에 큰 관심을 가졌던 고인은 오랜 취재와 연구에 바탕을 둔 전문가적 식견을 인정받아 1995년 12월 제23대 부총리 겸 통일원 장관에 취임했고 2년 2개월 동안 정부의 대북정책을 이끌었다.
1998년 울산대 재단이사에 이어 1999년 이 대학 석좌교수에 취임한 그는 ‘북한의 어제와 오늘’ ‘한국정치와 언론’이란 제목의 교양 과목을 가르쳤다. 도쿄 특파원 당시 한일수교 과정을 지켜보는 등 일본 사정에 밝을 뿐만 아니라 통일부총리를 지내며 북한 사정에도 해박했던 지식을 후학들에게 전달했다.
고인은 ‘2005년 한일 우정의 해’를 앞둔 2004년 11월 당시 아사히신문의 와카미야 요시부미 논설주간과 양국 간 100년사를 조망하는 대담집 ‘한국과 일본’을 펴냈다. 2003년 10월부터 9개월간 4회에 걸쳐 진행한 대담을 엮은 이 책에서 고인은 “일본인을 한 사람도 알지 못하는 한국인이 일본을 논하는 것은 공허할 뿐”이라고 지적했다. 고인과 와카미야 논설주간은 국제사회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기 위해서는 아시아 국가 간 연합이 필요하다고 제안하며 아시아의 평화를 역설했다.
허진석 기자 jameshuh@donga.com
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