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5> 토끼의 뿔과 거북의 털을 구하러 다녔소
1987년 불자들이 10·27법난의 진상 규명을 촉구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법난의 실체가 속속 드러나고 있지만 전 과정에 대한 규명과 피해자 보상 등은 아직 미완의 과제다. 불교신문 제공
당시 서울 도선사 주지였던 혜성 스님(73)의 말이다. 스님은 청담 스님이 총무원장으로 있을 때 함께 종단 일을 맡기도 했던 오랜 도반이다.
혜성 스님의 ‘혐의’는 17억5000만 원의 재산 축적과 요정 운영이었다. 돈은 청담고등학교와 도선사, 복지법인의 보육원과 양로원의 시세평가 총액이었다. 요정은 청담고를 인수하면서 함께 딸려 온 미군클럽으로 원주인에게 되돌려 주는 과정에 있었다. 스님은 무혐의로 풀려났다. 그러나 고문 후유증으로 장기간 병원 신세를 져야 했고, 정신적인 상처는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이렇게 길게 언급할 수밖에 없다. 생각 같아서는 모든 분의 이름을 쓰고 싶다. 이들의 면면을 보면 법난 자체가 조계종에 대한 치밀한 공격이자 모욕이었다는 것이 여실히 드러난다. 나를 포함한 총무원 간부뿐 아니라 원로와 본사 주지 대부분을 잡아들여 사실상 종단을 정지시켰다.
지선, 중원 등 30∼40여 명의 스님은 경기 남양주 흥국사로 끌려갔다. 이른바 ‘불교판 삼청교육대’다. 육체적 고통은 세속의 삼청교육대에 비해 덜했다지만 강제적인 기도와 참선, 정신교육이 이어졌다. 수행자들에게는 씻을 수 없는 치욕이었다.
그해 23일의 불법 수사를 받고 나온 뒤 12월 흥국사를 찾아갔을 때의 기억은 지금도 생생하다. 서로 얼굴을 마주해도 참담한 마음에 말이 나오지 않았다. “불교계 전체가 겪는 환란이다. 극복하자”고만 했다.
불교계는 당시 법난으로 회복하기 어려울 정도로 명예가 실추됐고 수백만의 신도가 떠났다. 1978년 문공부가 발표한 1977년 기준 국내 종교 교세 현황에 따르면 불교 인구는 1290만 명이었다. 그러나 1982년 자료에는 750만 명으로 무려 540만 명이 줄었다.
나는 지난달 12일 ‘10·27 법난피해자명예회복심의위원회’에 피해신고 및 명예회복 신청서를 제출했다. 개인뿐 아니라 조계종, 나아가 불교계 전체의 명예회복을 위해서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최근 발간한 회고록에서 보안사령관으로 합동수사본부장을 겸하고 있던 자신이 정화(淨化)를 지시한 책임자라고 고백했다. 개인적으로 불교 신자인 데다 부패가 심해 정화가 필요했다는 주장이다. 그러면서 칭찬 받을 일을 의욕이 앞서다 보니 실수를 저질렀다고 했다. 참 낯이 두껍다.
‘제법종연생 제법종연멸(諸法從緣生 諸法從緣滅)’이라. 모든 것이 인연 따라 생멸하고 무상하다. 불제자의 한 사람으로 개인의 과오를 용서한다. 그러나 그것과 법난의 전 과정에 대한 철저한 진상규명, 정당한 보상과는 다른 문제다. 그래서 법난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정리=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