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드웨어 기반 한국에 가장 무서는 흐름은 바로 '클라우드'●진짜 소프트웨어 강자 '아마존'의 행보를 주목하라
아마존은 외견상 무척이나 작은 규모의 IT 책 쇼핑몰에 불과하다.
올해 국내 IT업계를 강타한 뉴스 가운데 가장 떠들썩한 것은 구글의 모토로라 인수가 아니었을까?
독자적 스마트폰OS를 갖지 못한 대한민국이 된통 당할 수 있다는 공포심으로 가득 찼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제 두어 달 지나고 난 지금은 그것도 많이 잠잠해졌다. '한국형 안드로이드 프로젝트'로 장단을 맞추었던 정부와 경제계도 최근 삼성이 애플을 앞서 스마트폰 판매 1위 소식에 두 다리 쭉 펴고 주무시지 않나 생각해 본다.
■ 아마존의 '포크'… 구글에 도전장을 내밀다
그런데 필자는 이 같은 프레임에 동의하지 않는다.
인터넷 서점이자 쇼핑몰 아마존의 e북 리더 '킨들'. 저가 정책을 앞세워 빠르게 컨텐츠 시장을 장악해 가고 있다. 클라우딩 시장까지 아마존이 장악할 경우 그들의 위세는 더 높아질 것이다. 동아일보 DB
포크란 소프트웨어의 오픈된 소스코드를 어느 한 시점에서부터 자기 마음대로 수정하고 자기들만의 버전을 만들어 낸다는 의미로, 아마존 타블렛은 구글이 아닌 순전히 아마존 버전의 안드로이드라는 점이다.
하지만 필자는 아마존 타블렛이 크게 히트 할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이것이 구글에게도, 한국의 IT업계에도 대단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 예견한다.
먼저 아마존은 어떤 회사인지 살펴보자.
아마존(amazon.com)이란, 1994년 월스트리트에서 프로그래머로 일하던 제프 베조스 (Jeff Bezos)는 뉴욕에서 시애틀까지 이삿짐을 싣고 운전해 창업한 회사다.
이른바 '인터넷 골드러쉬' 제 1세대다. 그가 시애틀에서 세운 온라인 서점이 Amazon.com 인데, 처음 10평도 안되는 창고에 책을 보관하고 인터넷 주문을 받으며 사업을 시작했다.
그렇지만, 겉으로 보이는 아마존의 모습, 즉 인터넷 쇼핑몰이 전부가 아니다. 그 뿌리에 있는 서비스들을 살펴보면 놀랍다.
'인터넷 골드러쉬' 1세대인 제프 베조스(Jeff Bezos) 아마존 회장. 그는 아마존을 소프트웨어 강자로 키워냈다. 동아일보 DB
■ 아마존은 단순 쇼핑몰 그 이상, 진짜 SW강자
현재 아마존이 운영하고 있는 몇 가지 서비스들만 나열해 보면 다음과 같다
▶아마존 웹서비스: 세계 최대 규모의 클라우드 컴퓨팅 서비스
▶킨들 이북: 100만 편 이상의 책이 킨들 이북으로 등록되어 있고, 이미 이북이 종이 책보다 많이 팔린다고 공개했음
▶아마존 MP3: 애플 아이튠스에 뒤지지 않게 음악이 많고, 가격은 더 저렴
▶아마존 앱스토어: 아마존만의 안드로이드 앱스토어
▶아마존 인스턴트 비디오: 영화, 드라마 등의 비디오 스트리밍 서비스 .
우선 아마존 킨들 태블릿에 올라가는 서비스들 몇 가지만 추려보면, 킨들 이북, MP3, 비디오 스트리밍, 클라우드 드라이브 (파일 저장 서비스), 클라우드 플레이어(클라우드 방식 mp3 플레이어), 그리고 안드로이드 앱스토어가 있다. 앱스토어를 통해서 트위터, 페이스북과 같은 인기 앱들은 당연히 다운 가능할 것이다.
이쯤 되면…"오, 아마존 타블렛도 그럴듯한데?"…이런 반응을 예상할 수 있다. 그런데 아마존의 최고 강점이 무엇인줄 아는가? 그것은 바로 고품질 서비스에 더해서 이루어지는…"가격 후려치기!", 바로 그것이다.
■ 아마존의 제프 베조스 '갈아 치우는 천재'
아마존 타블렛 가격은 이미 기존 타블렛 절반도 안되는 $199에 발표됐다. 하드웨어에서 어느 정도 손해를 보고 들어가도 서비스로 이익을 확보하는 전략이다. 그런데, 아마존이 제공하는 대부분 서비스들조차 경쟁사들에 비해 가격이 터무니없이 싸다.
이처럼 저가 전략은 아마존만의 특성인데, 아마존 CEO 제프 베조스를 흔히 갈아 치우는 리더(Disruptive leader)라고 부르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아마존의 저가, 고급 서비스 전략은 지금껏 수많은 회사들을 무너뜨렸다. 최근 대형 서점 보더스(borders)가 문을 닫았고, 소니가 먼저 시작한 이북시장은 킨들로 접수했으며, 서킷시티같은 미국의 대형 오프라인 매장들을 문 닫게 한 장본인이다.
저가 전략이라니, 이것은 중국의 전략 아니던가? 또 한편으로 새로운 시장을 창조하기보다 늦게 진입해 시장을 갈아 엎어버리는 전략, 이건 왠지 우리의 강점 패스트 팔로어(fast follower)전략과 비슷하지 않은가?
하지만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그것은 아마존이, "철저한 소프트웨어 회사" 라는 사실이다.
웹사이트 하나가 전부인 듯 위장하고 있지만 그 내부를 들여다보면, 빠르고 편리한 쇼핑 경험, 타 온라인 상점과는 상대도 되지 않는 배송 시스템, 수요 ,공급을 예측해서 결정하는 제품 가격 등은 아마존만의 검색, 데이터 마이닝, 시스템 최적화의 결과물이다.
이 같은 소프트웨어 능력의 절정은 뒤에 소개할 아마존 웹서비스라는 세계 최고의 클라우드 시스템에 있다. 아마존에 들어가는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는 업계의 탑 클래스다. 구글이나 MS에 비해 절대 뒤지지 않는 인재들이 넘쳐나는 곳이 바로 아마존 정글이다.
아마존의 실상은 무척이나 탄탄한 소프트웨어 기업이라는 것. 클라우딩 시장에서의 차기 대권 1순위 후보다.
■ 아마존 서서히 드러나는 '클라우드 황제'
IT쪽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이미 아마존이 클라우드 시장에서 차지하는 압도적 위상을 알고 있을 것이다. 클라우드는 아마존에서 시작했고, 아마존이 시장의 대부분 (약 70% 정도)을 장악하고 있다.
최근 새롭게 시작하는 실리콘벨리 벤처기업들 거의 대부분(사진 참조)이 아마존의 클라우드에서 자신의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다. 여기에 추가해 애플의 iCloud도 아마존을 이용한다고 알려져 있다.
지금까지는 논픽션 이었다면, 이제 상상력을 조금 발휘해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필자는 구글이 모토롤라 모빌리티를 인수한 배경에 특허 말고도 아마존의 움직임이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한다. 구글은 안드로이드에 많이 투자해 왔지만, 하드웨어 업체에 부가하는 라이센스 비용이 없기 때문에 그 자체로는 수입을 얻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투자한 이유는 검색결과에 띄우는 광고에서 얻는 수익 등 자신이 보유하게 될 데이터와, 앱, 서비스를 활용하는 돈벌이를 구상해왔던 것이다. 그런데 안드로이드 점유율이 올라가고 이제 좀 돈을 벌겠구나 싶은 시점에 엉뚱한 녀석인 '아마존'이 시장에 끼어든 것이다.
구글이 기껏 만들어놓은 안드로이드를 '포크'하더니, 구글보다 더 잘 갖추어진 컨텐츠(mp3, 이북, 비디오 등)와 자기들만의 앱스토어로 구글의 영역(데이터와 서비스)을 침범하려는 것이다.
얼마 전까지 아마존은 모바일시장에 직접 뛰어들지 않았다. 뛰어난 AWS 클라우드를 구축하고 무심하게 mp3, ebook 시장을 저렴한 가격으로 장악해 들어갔다. 그러다가 갑자기 구글의 밥그릇에 큰 숟가락을 올려놓은 것이다. 이것이 모토로라 인수에 영향을 끼쳤다는 건 어쩌면 논리의 비약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구글은 어떻게든 아마존이 만들어낼 $199 타블렛과 경쟁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
하드웨어 회사를 보유하는 것은 아마존 같은 강력한 클라우드/서비스 회사에 대응할 무기가 된다. 구글은 사용자의 인터넷 데이터를 분석해 돈을 버는 회사다. 아마존이 지배하는 안드로이드 트래픽은 구글에게 배달되지 않는다.
최근 새롭게 시작하는 실리콘벨리 벤처기업들 거의 대부분이 아마존의 클라우드에서 자신의 서비스를 운영 중이다.
■ 클라우드 대세는 '하드웨어 한국'에 대재앙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지는 것 아닌가? 우리 기업들에게 최악의 시나리오가 그려질 수도 있다.
아마존은 한 달 후 $199 타블렛을 출시하고, 예전부터 그래왔듯 이번엔 타블렛 시장을 장악해 들어간다. 구글 역시 이에 질세라 모토로라를 통해 타블렛과 스마트폰을 저가에 팔기 시작하고 검색과 광고, 앱스토어 등 서비스 쪽에서 손해를 메우거나 이익을 얻게 된다. 두 회사는 경쟁을 해도 살아남고 어쩌면 더 나은 수익을 올릴지도 모른다.
최근 급성장하는 온라인 소프트웨어 시장을 볼 때 컨텐츠, 광고, 앱 시장의 성장은 하드웨어의 희생을 상쇄하고도 남을 수 있다. 디자인과 두터운 팬 층으로 먹고 들어가는 애플이 이제는 아이클라우드(iCloud)를 내세우는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일 것이다.
만일 이 같은 시나리오가 현실이 된다면, 이것은 우리에게 재앙이 아닐까? 우리는 뛰어난 하드웨어 제조기술이 있지만, 저렴한 가격에 데이터를 저장하고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클라우드 기술이 없다.
컨텐츠도 없고 클라우드에서 어플리케이션을 돌리는 경험도 없다. 지금 실리콘밸리에서는 컴퓨터, 자본도 없이 아이디어만 가지고 클라우드에서 프로그래밍하고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는 젊은이들로 넘쳐난다. 클라우드가 단지 기술 트렌드가 아니라, IT판을 뒤엎고 있다는 뜻이다. HP가 타블렛과 PC사업 접고 현금을 탈탈 털어서 데이터 검색하는 회사 오토노미(Autonomy) 를 사는 것은 사춘기소녀 반항이 아니다. 그곳에 미래가 있기 때문이다.
"너무 비관적인 것 아닌가? 아직 스마트폰이 대센데, 클라우드가 설마 그렇게 빨리 발전할까?"
15년 전 제프 베조스는 이삿짐을 싣고 미 동서부를 횡단하고 있었고, 구글의 창업자는 기숙사에서 열띠게 인터넷에 대해 토론하고 있었다. 지금 그들은 클라우드로 세상을 집어 삼키고 있다. 오늘의 결론은 그래서 이것이다.
"문제는 클라우드다. 모바일 OS에 헛다리짚지 말자"
박상민 IT칼럼니스트 | twitter.com/sm_pa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