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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과 내일/정성희]프레임을 깨고 나와서 공감하라

입력 | 2011-11-04 20:00:00


정성희 논설위원

서울시장 선거에서 드러난 2040의 민심에 화들짝 놀란 한나라당이 소통 강화를 한다고 부산스럽다. 당직자 1000명을 교육시켜 트위터 대응에 나서는가 하면 상당수 의원이 페이스북이나 트위터에 글을 올리고 있다. 홍준표 대표는 대학생, 금융권 종사자와의 타운미팅을 가진 데 이어 백지연의 ‘끝장토론’에도 출연하며 잰 행보를 펼치고 있다. 이런 일도 안 하는 것보다야 낫겠지만 아줌마들이 ‘소녀시대’ 흉내를 내는 것처럼 어색해 보인다.

베스트셀러에 드러난 시대정신

한나라당이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의 ‘청춘콘서트’를 흉내 내서 시작하려던 ‘대학생 드림토크’가 외부 인사의 대거 불참으로 집안 잔치로 끝나게 생겼다. 자발성과 진정성 부족이라는 한나라당의 한계를 보는 것 같다. 나는 정치권이 젊은이와 소통한답시고 좌충우돌하는 것보다 조용히 앉아 2040이 즐겨 보는 책을 읽어 보길 권한다. 베스트셀러에는 그 시대의 고민과 화두가 녹아 있다.

올 9월 말 ‘일상의 철학자’라는 별명을 가진 저술가 알랭 드 보통이 방한해 독자들과 만났다. 보통은 정치 이념 같은 거대담론이 아니라 가족 여행 직업 등 일상을 모티브로 독창적이면서도 인문학적 통찰이 번득이는 글을 써 오고 있다. 그의 저작은 그가 살고 있는 영국을 제외하고는 한국에서 제일 많이 팔린다. ‘불안’을 비롯한 10여 권의 책이 누적부수로 100만 부 넘게 팔렸다. 보통은 일본에서는 거의 팔리지 않는 책이 한국에서 팔리는 데 대해 “불안의 정도가 이유인 것 같다”고 말했다. 한국 사회의 불안감이 크다는 얘기다.

마이클 샌델 하버드대 교수의 ‘정의란 무엇인가’는 지난해 한국 사회를 강타하며 이명박 정부의 ‘공정사회’ 담론에 불을 붙였다. 책은 학생들에게 이야기하듯 저술돼 있고 예시가 풍성하지만 결코 읽기 쉽지는 않다. 솔직히 말해 난삽하다. 그럼에도 이 책이 100만 부 이상 팔린 것을 보면 우리 사회에 정의에 대한 갈증이 폭넓게 존재함을 보여준다.

제러미 리프킨의 ‘공감의 시대’도 젊은 세대에게 입소문을 탔다. ‘엔트로피’의 저자이기도 한 리프킨은 경쟁과 적자생존의 시대가 지나가고 공감을 바탕으로 한 새로운 시대가 도래할 거라고 예측한다. 공감이란 다른 사람이 겪는 정서, 경험, 고통을 그대로 느끼는 상태를 말한다. 미국 정치인들은 공감능력을 잘 활용하고 또 그래야 한다. 빌 클린턴은 대통령 후보 시절인 1992년 3월 맨해튼에서 에이즈 운동가 밥 라프스키에 대한 질문에 “당신의 고통을 느낍니다”라고 말해 당선의 발판을 마련한다.

김난도 서울대 교수의 ‘아프니까 청춘이다’가 100만 부나 팔려 나간 것도 ‘공감’에서 이유를 찾을 수 있다. 그는 구체적 해법도, 장밋빛 희망도 주지 않는다.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힘겨운 나날을 영위하는 젊은이에게 청춘은 원래 아픈 거라고, 그저 따뜻한 위로와 격려를 보낼 뿐이다. 자신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주고 등 두드려 주는 것만으로 감동할 정도로 지금 청년들은 힘겹다. 정치꾼들에게는 좌우이념이 중요하겠지만 청년들에게는 모두가 기득권층일 뿐이다. 정치권은 그들만의 프레임에 갇혀 공감능력을 잃어버렸다.

이단아의 성공에 환호하는 대중

우리나라만의 현상은 아니지만 스티브 잡스의 공식전기도 날개 돋친 듯 팔려 나간다. 잡스의 모순투성이 인생이야 언제든 충분한 얘깃거리를 제공하지만 그가 모범생이었다 해도 그랬을까. 아닐 것이다. 비주류의 이미지, 편집증적 완벽주의, 창조적 소수가 가져오는 궁극적 혁신에 사람들이 매료되고 있다. ‘이긴 것도 진 것도 아니다(선거결과에 대해)’, ‘안철수 들어오면 한 달 안에 확 꺼진다’, 이런 아전인수식 해석에다 짝퉁 행사를 하면서 소통한다고 생각하는 한나라당은 잡스 같은 이단아의 성공 스토리에 대중이 왜 열광하는지 본질을 모르는 것 같다.

정성희 논설위원 shch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