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는 주인이 매일같이 귀여워하다 갑자기 걷어차더라도 오랫동안 슬퍼하거나 노하지 않는다. …왜 부당하게 걷어차여야 하냐고 항변하거나 이렇게 살아서 뭐하냐고 자기연민에 빠지지도 않으며, 걷어차이지 않을 권리가 있다고 태업을 하거나 탄식하지도 않는다.”
―은희경, ‘그녀의 세 번째 남자’》
B는 오래전부터 시추 한 마리를 키우고 있다. 그는 시시때때로 대단한 애정을 갖고 개 자랑을 해왔다. 그 개의 밥 먹을 때 버릇, 휴식 때 즐겨 취하는 포즈, 잠잘 때 습관, 심심할 때 놀아달라고 부리는 애교의 종류 등등. 하지만 막상 그 개를 실제로 만났을 때, 나는 별로 귀엽다고 느끼지 못했다. 굉장히 산만하게 몸부림치는 개라는 느낌만 강했다. 그게 객관적 인상이었다. 하지만 B는 그 개를 객관적으로 대하지 못했다. 그는 세상의 다른 모든 개보다 그 개가 귀엽다고 생각했다. 내가 그게 아니라는 사실―그러니까 그 개는 개 중에서도 그렇게 귀여운 편에 속하지는 않는다는 엄밀한 사실―을 일깨워주면 언짢아했다.
그런 B를 보며 나는 다음과 같은 궁금증을 품게 됐다. ‘사람들은 왜 개를 좋아할까.’ 설령 나에 대한 B의 마음은 변할지라도, 그 개에 대한 마음은 쉽게 변하지 않을 거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가 새 여자친구와 산책을 하는 동안에도 그 개는 산만하게 헉헉거리며 B의 옆을 지킬 것이다.) 그건 B뿐만 아니라 애완견을 키우는 대부분의 사람이 마찬가지일 것이다. 개에게 ‘사랑인 줄 알았는데 어느 날 아니란 걸 깨달았다’ ‘우리 관계의 본질을 다시 생각해보자’는 등의 이유로 이별을 선포할 사람은 없다. 데이트 상대가 몇 번이나 바뀌는 동안에도, 그나 그녀의 곁을 지키는 개는 늘 같은 개일 것이다.
그래서 B에게 물어봤다. 모든 사람은 모든 사람에게 싫증을 내게 돼 있다. 사람은 만나면 대부분 헤어진다. 그리고 미워하고 증오하기도 한다. 그런데 왜 사람이 아닌 개는 일관되게 좋아하는가. 사람과는 말도 통하고 개와 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다른 것을 함께 할 수 있는데, 왜 개에 대한 마음보다 사람에 대한 마음이 더 쉽게 변하는가. B는 ‘개는 귀여우니까’라고 말했다. 하지만 개보다 훨씬 더 귀엽고 예쁜 여자도 버림받는다. B는 또 ‘애완동물은 오래 키우면 가족과 다름없으니까’라고 대답했다. 하지만 인간은 가족들끼리도 서로 증오하고 이혼하거나 심지어 싸우고 죽이기도 한다.
B는 마침내 대답을 포기했다. ‘몰라, 어쨌든 귀여워’로 끝났다. 자신이 키우는 요크셔테리어가 톰 크루즈의 딸 수리와 똑같이 생겼다고 주장하는 한 친구의 결론도 비슷했다. “복잡한 논리와 이성적 사고 따윈 집어치워, 이렇게나 귀여운 걸, 우쮸쭈쭈….” 하지만 여전히 궁금했다. 왜 사람은 때때로 사람보다 개에게서 더 큰 신뢰와 우정을 느낄까. 사람에게 느끼는 싫증, 상처와 분노, 환멸을 왜 개에게서는 거의 받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어떻게 개는 맹렬히 꼬리치는 것만으로도 사랑받을 수 있는가. 질문이 계속 이어질수록 개의 정체는 미궁 속으로 빠져들었지만, 적어도 한 가지―인간은 불행한 동물이다―는 분명해지고 있었다.
appena@naver.com
톨이 Humor, Fantasy, Humanism을 모토로 사는 낭만주의자. 서사적인 동시에 서정적인 부류. 불안정한 모험과 지루한 안정감 사이에서 줄다리기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