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40 여론에 귀기울이는 언론토양 모색해야”
동아일보 독자위원회는 지난달 31일 본사 편집국 회의실에서 회의를 열고 ‘서울시장 보궐선거와 언론 보도’를 주제로 토론했다. 왼쪽부터 이주향 위원, 이진강 위원장, 김동률 위원.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이진강 위원장=이번 선거의 특징은 ‘돌발 상황’이라는 것입니다. 언론도, 국민도, 여야 정당도 전혀 예측하지 못한 상황이었죠. 정당엔 당황스러운 상황이었겠지만 시민단체 쪽엔 기회가 됐습니다. 국민은 내년 4월 국회의원 총선거와 12월 대통령 선거가 정치적 의사 결정의 시기라고 생각했는데 훨씬 빨리 온 거죠. 한나라당은 마땅한 후보가 없어 추대 형식으로 나경원 후보가 나섰고, 민주당은 어렵사리 후보를 냈지만 야권 후보 단일화 과정에서 시민단체에 짐으로써 당의 운명조차 어찌 될지 모르게 됐습니다. 언론의 후보 검증은 적정하게 이뤄졌다고 보지만 결과적으로 큰 영향은 미치지 못한 듯합니다.
이주향 위원=검증 문제를 보면서 성인(聖人)이라도 통과하기 어렵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흠집 내기도 공평하게 해야 한다는 부담감에서 비롯된 형평성이 오히려 분위기를 흐려 놓을 수 있습니다. 박 후보에겐 시민운동을 한 사람으로서 ‘이것도 저것도 다 흠결이다’ 하는 식으로 들이밀었다는 느낌이 듭니다. 이게 이른바 2040세대에겐 안 통했습니다. 이번 선거를 보면서 우리 사회가 정당이 뭔가를 만들어 가는 시대를 완전히 넘어섰다고 느꼈습니다. 많은 사람의 의견을 직접 수렴할 수 있는 통로가 생겼습니다. 그래서 이젠 정당 정치가 민주주의라는 교과서적인 생각이 꼭 옳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김동률 위원=이번 선거 보도는 후한 점수를 주기 어렵습니다. 신문이 수많은 매체 가운데 살아남는 이유는 ‘도대체 왜 그렇고, 어떻게 그럴 수 있고, 그 의미는 뭔지’를 자세히 알려주기 때문입니다. 정치인들이 왜 네거티브 전략을 쓰는지에 대해 독자에게 충실한 답을 주어야 합니다. 이번 선거에서 보도 기사는 팩트 위주였어도 칼럼에는 상당한 의도가 있었다고 봅니다. 서구에서는 언론이 특정 후보를 지지하는 게 용인됩니다. 우리는 그게 용인되지 않는데도 한쪽 편을 드는 사태에 대해 냉정하게 짚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성희롱으로 문제가 됐던 한 의원이 쏟아내는 폭로를 언론이 중계하듯 쓰는 것을 보고 선거가 희화화된다고 느꼈습니다. 우리가 제법 선진국이 됐지만 여전히 후진성을 면치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국민이 선거나 정치에 냉소적으로 흐르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듭니다.
이 위원장=언론이 선거 후보자들을 검증하기 위해 정확한 사실을 알려야 할 의무가 있는 건 분명합니다. 같은 검증 사안을 놓고 신문의 성향에 따라 한쪽은 가혹하게, 한쪽은 부드럽게 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것은 유권자를 헷갈리게 합니다. 정치란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이루게끔 하는 것인데 이 쉬운 것을 정치인이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 언론이 정치인들을 일깨워서 진정한 정치를 하도록 길을 터 줘야 합니다.
이 위원=희망이 없는 청춘인 20대, 고달픈 비정규직인 30대, 미래가 불안한 40대라고들 합니다. 그런데 한쪽에선 부자들 세금 다 깎아 주니까 미래가 없다고 생각해서 그들이 ‘이건 안 된다’고 분노한 겁니다. 청와대는 내곡동 사저 문제를 통해서 박 후보를 제일 많이 도와 준 듯합니다. 그런 상황들이 ‘희망 없는 청춘들’이 우리 문제는 우리가 설계하자며 투표한 것이라고 봅니다. 그 결과로 그동안 여론을 주도했던 신문들이 이번엔 여론을 선도하지 못하는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하지만 역으로 생각하면 언론이 새로운 지향점을 다시 찾을 토양이 마련됐다고 할 수 있습니다.
김 위원=우리나라에선 선거 여론조사 결과를 선거일 5일 전부터는 공표할 수 없습니다. 편승 효과나 동정표 쏠림 현상을 막기 위한 것인데 우리의 민도가 그런 법을 만들던 수십 년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높아졌습니다. 출구조사도 투표소에서 100m 이상 떨어진 곳에서 하도록 돼 있습니다. 이건 이미 사문화되다시피 했습니다. 언론은 이런 시대에 뒤떨어지고 불합리한 규제의 문제점을 제기하고 국민에게 알릴 의무가 있습니다.
―이번 선거를 얘기하면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빠뜨릴 수 없습니다. SNS는 하나의 대세가 됐습니다. 신문으로서는 영향력 면에서 SNS에 엄청난 타격을 받았습니다. SNS의 순기능과 역기능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신문은 SNS와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해야 할지도 고민해 봐야 합니다.
이 위원장=일부 부작용이 있긴 하지만 순기능이 훨씬 많습니다. 언론의 제일 자유스러운 창구입니다. 소통의 수단으로서 잘 활용해야 합니다. 이번 선거에서 선거관리위원회가 규제에 나서기도 했는데 섣불리 규제하려다가는 역작용을 낳을 수 있습니다.
이 위원=새로운 미디어의 등장에 맞춰 새로운 윤리와 법이 정립돼야 하는 건 맞습니다. 근데 그게 소통되는 영역 자체를 차단한다는 건 불가능하다는 것을 이번에 보여 줬습니다. 규제가 아니라 어떻게 공존할지를 고민해야 합니다.
박태서 스탠더드에디터=철저한 검증을 거쳐 나온 보도가 아니라 검증도 안 된 채 떠도는 얘기를 믿고 정치적 의사 결정을 하는 것은 SNS의 부작용이라고 봅니다. 내년 양대 선거에서도 크게 달라질 것 같지 않습니다. 신문도 이제 SNS를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고 거기에 편승하거나 영향력을 미치겠다고 해서도 안 됩니다.
이 위원장=정치를 해본 적이 없는 사람이 정치를 한다고 나섰습니다. 시민운동과 정치는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시민운동은 비판하고 잘하라며 이끄는 일이고 정치는 당사자로서 여러 이해관계를 조율하고 이끌어야 하는 일입니다. 박원순 시장이 이왕 나선 일인 만큼 잘하기 바랍니다. 언론은 정치 발전을 뒷받침하기 위해 어떤 구실을 해야 할지 더욱 고민해야 할 것입니다.
정리=여규병 기자 3spring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