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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연구 권위자’ 스칼라피노 교수 별세

입력 | 2011-11-05 03:00:00

‘5·16’ 2년전 예측… DJ 구명활동… 北 6차례 방문
그의 삶-연구가 바로 한국 현대사




‘한국 공산주의운동사’ ‘김일성’ 등을 출간하며 한반도를 비롯한 동아시아 연구의 권위자로 손꼽혔던 로버트 스칼라피노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명예교수(사진)가 1일(현지 시간) 캘리포니아 주 오클랜드에서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2세.

1919년 캔자스 주에서 출생한 그는 1948년 하버드대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은 뒤 1949년부터 50여 년간 버클리대 교수로 재직했다. 스칼라피노 교수는 미국에서 본격적으로 아시아를 연구하기 시작한 1세대 학자로 손꼽힌다. 한국은 물론이고 중국과 일본, 인도 등 아시아의 정치 및 사회 변화에 큰 관심을 가져왔다.

스칼라피노 교수는 1941년 일본의 진주만 공습을 지켜본 것을 계기로 아시아의 정치사회 문제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1943년부터 3년간 해군 장교로 복무하며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기도 한 그는 지난해 출간한 회고록 ‘신동방견문록’에서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난 이후 아시아는 내 인생이었다”고 밝혔다.

2002년 한국을 방문해 서울 성균관대에서 강연하는 로버트 스칼라피노 교수. 동아일보DB

그는 1978년 버클리대 동아시아연구소를 세운 뒤 1990년까지 소장을 맡으며 동아시아 전반에 대한 폭넓은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저서 ‘한국 공산주의운동사’와 ‘김일성’ 등을 통해 한국 현대사를 심도 있게 다뤄 왔으며, ‘현대 일본정당과 정치’ ‘중국의 사회주의 혁명’ ‘미국과 아시아’ 등 아시아 문제를 파헤친 수많은 저서와 논문을 남겼다. 중국 베이징대에서 연구교수로 재직한 경험도 있다.

스칼라피노 교수는 한국과는 특별한 인연을 갖고 있다. 본격적으로 한국에 대해 연구를 시작한 계기는 그의 대학원 제자였던 이정식 미 펜실베이니아대 명예교수 겸 경희대 석좌교수의 권유가 결정적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그는 고려대 명예교수인 한승주 전 외무장관 등 많은 한국인 제자를 길러냈다.

특히 1959년 스칼라피노 교수가 미국 상원에 제출한 한국 관련 보고서는 학계에서 ‘전설’처럼 회자된다. 당시 그는 보고서를 통해 군사 쿠데타 발생 가능성을 내다봤는데 불과 2년 만에 실제로 발생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그는 나중에 “가능성을 예측하긴 했지만 그렇게 빨리 일어날 줄 몰랐다”고 회고했다. 또 이 교수와 함께 쓴 1973년 작 ‘한국 공산주의운동사’는 한때 금기시됐던 김일성의 일제강점기 항일운동을 본격적으로 다뤘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의 회고록에는 박정희 전 대통령과 김대중 전 대통령을 만났던 일화도 소개돼 있다. 스칼라피노 교수는 박 전 대통령에 대해 “단순하고 전통적인 정치관을 지녔다는 첫인상을 받았다”고 기억했다. 1973년 일본에서 망명 중인 김 전 대통령을 만났고, 이후 그의 구명활동을 위해 노력했던 일화도 소개했다. 1989년 첫 방문 뒤 모두 6차례나 북한을 방문했던 그는 “외부 세계와 완벽하게 차단된 기이한 사회란 인상을 받았다”며 “통일이 이뤄지려면 반드시 북한 내부에서 대대적인 정치 경제적 변화가 선행돼야 한다”고 털어놓았다.

스칼라피노 교수는 1990년 정년퇴임한 뒤에도 버클리대 종신 명예교수로 활발하게 활동했다. 지난해 9월 마지막으로 한국을 방문했다. 버클리대는 2일 교수 일동 명의로 “그의 별세에 깊은 슬픔을 느낀다”고 조의를 표했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