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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순일의 ‘내사랑 스포츠’]“‘조광래축구’ 1년4개월을 분석해 보니…”

입력 | 2011-11-06 09:05:00


최근 소속팀 아스널에서 잉글랜드 프로축구 데뷔골을 터뜨린 박주영. 스포츠동아

한국축구대표팀 조광래 감독이 지난달 26일 박주영(아스널)의 잉글랜드 축구 데뷔골 소식에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는 소식을 듣고, "그럴 만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박주영이야말로 최근 한국축구대표팀이 가진 A매치 4경기에서 7골을 터뜨리며 조광래 감독을 웃음 짓게 만들고 있는 최고의 골잡이이기 때문이다.

그런 박주영이 아스널에 입단한 뒤 2개월 동안 주전으로 기용되지 못하고 벤치만 덥히고 있었는데 선발로 나서 멋진 골을 터뜨렸으니 말이다.

박주영이 데뷔골을 터뜨린 다음날 조광래 감독은 월드컵 3차 예선 원정경기에 나설 축구대표팀 23명을 발표했다.

예상대로 박주영을 주축으로 손흥민(함부르크), 지동원(선덜랜드), 구자철(볼프스부르크), 기성용(셀틱) 등 해외파를 위주로 구성됐다.

조 감독은 "어지간하면 앞으로 이 선수들을 주축으로 조직력을 다져가겠다"고 했다.

"조직력이라…."

부상으로 국가대표팀에서 뛰지를 못하고 있는 이청용. 스포츠동아

이청용(볼턴), 차두리(셀틱)가 부상으로 그동안 제대로 활약을 하지 못했고, '조광래 호' 출범 직후 맹활약했던 지동원 구자철 등도 컨디션이 안 좋았다는 점을 감안해도 최근 한국축구대표팀의 경기 내용은 수준 이하였다.

최근 벌어진 월드컵 3차 예선에서 레바논과의 첫 경기는 6-0으로 대승을 거뒀으나, 쿠웨이트전은 1-1로 비겼고, 아랍에미리트(UAE)전에서는 상대의 자책골을 바탕으로 신승을 거뒀다.

특히 UAE전에서 보여준 경기력은 '한국축구가 1970년대로 돌아갔다'는 혹평을 받았다.

이날 경기를 분석한 자료를 보니, 이날 한국은 532개의 패스를 했는데 앞쪽에 있던 선수에게 패스한 것은 281개(53%), 횡패스가 102개(19%), 백패스가 149개(28%)였다.

패스의 숫자는 UAE(206개)보다 배 이상 많았지만 절반 가까이가 득점을 노리는 전진 패스가 아니라 옆이나 뒤로 돌리는 패스였다.

게다가 이날 상대에게 허용한 7차례의 슈팅 대부분이 우리 진영에서 횡패스를 하다 끊겨 역습을 당한 것으로 나타났다.

조광래 감독은 한국축구대표팀을 맡은 지 1년 4개월 동안 A매치에서 11승6무2패를 거뒀다. 스포츠동아

지난해 7월 '조광래 호'가 출범한 뒤 한국축구대표팀은 19번의 A매치를 치렀다. 전적은 11승6무2패. 승률 58%로 나쁘지 않은 수준이다.

하지만 내용은 들여다보면 라이벌 일본과의 대결에서는 2무1패로 단 한번도 이기지 못했다. 특히 지난 8월에는 0-3으로 완패를 당했다.

경기 결과 뿐 아니라 정교한 패싱과 톱니바퀴처럼 움직이는 조직력을 바탕으로 스피디한 공격축구를 구사하겠다고 해서 '만화축구'라고 까지 불렸던 '조광래 축구'가 지난해 나이지리아전을 비롯한 몇 경기를 빼놓고 실종됐다는 점이다.

이에 대해 축구 전문가들은 "기본기가 없는 패싱축구는 허망하기만 하다"며 "또한 해외파 선수들 몇 명의 활약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것도 문제"라고 지적한다.

이들은 "유럽 등에서 활약하는 태극전사들의 기량이 아시아권에서는 최상위급이지만 소속팀에서는 주전 자리를 확보하지 못할 정도로 세계 수준에서는 정상급이라고 할 수 없다"며 "이런 상태에서 조직력조차 제대로 갖추지 못하니 짜임새 있는 일본 같은 팀에게는 밀리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말 맞는 말이다.

한국축구의 궁극적인 목표가 월드컵 아시아 지역 예선 통과가 아니라 2014년 브라질월드컵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앞으로 조직력을 탄탄하게 다지겠다"는 조광래 감독의 다짐이 심사숙고한 뒤 나온 것이라는 걸 알게 한다.

한국축구대표팀은 오는 11일 UAE와 15일에는 레바논과 연속으로 원정경기를 치러야 한다.

2경기 모두 이겨야 함은 물론이고, 짜임새 있고 멋진 경기로 이겨야 한다는 점이다.

이유는 분명하다. 프로축구 승부조작에 이어 초등학교 축구에서까지 불미스러운 승부조작 사건이 터져 나오는 등 최악의 위기를 맞고 있는 한국축구. 그 유일한 희망은 태극전사들이 탑승한 '조광래 호'이기 때문이다.

권순일 기자 stt77@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