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 경제부 차장
21세기 글로벌 금융시대인 지금 19세기 말, 20세기 초에 주로 활동했던 모건의 사례가 어떤 의미를 지닐까. 당시와 지금이 시대는 달라도 덩치를 키워 편하게 수익을 얻는 측면에서는 사정이 비슷하다. 국내 은행권은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대형화의 길에 들어섰다. ‘조 상 제 한 서’로 줄여 부르던 조흥 상업 제일 한일 서울은행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고 거대 금융지주회사들이 그 자리를 채웠다. 곧 하나은행과 외환은행이 합치면 우리금융 KB금융 신한금융지주가 쥐락펴락하던 국내 금융시장에 하나금융지주가 도전장을 내밀 것이다. 2001년 말 국내 금융업에서 금융지주가 차지하는 비중은 12%에 불과했지만 지난해 말에는 50%로 부쩍 커졌다. 은행 중심의 금융지주가 차지하는 몫은 앞으로 더 늘어날 것이다.
하지만 국내 첫 금융지주가 출범한 2001년 이후 10년이 지나도록 금융선진국들의 은행과 어깨를 견줄 만한 국내 은행은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 덩치는 커졌지만 활동무대는 국내라는 동네 골목을 벗어나지 못한 셈이다. 좁은 영업지역에 지점 수가 1000개 정도에 이르면 수수료라는 안정적인 수익을 얻기도 쉽다. 촘촘한 그물을 넓게 펼쳐놓고 어린 물고기까지 잡아들이는 방식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이미 2004년에도 은행권의 수수료 장사가 지나치다는 지적이 있었다. 당시 윤증현 금융감독원장은 ‘은행 수수료가 고객 입장에서 설득력 있게 책정됐는지 점검할 필요가 있다’고까지 말했다. 그 후 6년이 지났지만 사정은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동네 조무래기들의 푼돈을 차지하려고 아웅다웅 싸우는 모양새가 여전할 뿐이다. 원래 몸집을 키우라고 한 이유는 글로벌 무대에 나가 한국 금융의 위상을 높이라는 데 있었건만.
이진 경제부 차장 lee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