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헌수 순천향대 금융보험학과 교수 아시아태평양보험학회장
사회적 흑사병 같은 보험사기
인류 역사에서 인간 수명을 연장하고 물질적 풍요를 가져온 것은 위험을 이해하고 대비하면서부터였다. 위험을 과학적으로 관리하는 보험의 탄생은 인간의 삶을 ‘불확실’에서 ‘안정’으로 전환시켰다. 그 후 보험은 자본 투자의 든든한 안전망이자 사회보장의 기본 골격이 됐다. 우리나라 4대 사회보험인 국민건강보험 국민연금 산업재해보험 고용보험이 좋은 예다. 사회보험과 함께 사적인 위험을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곳이 보험회사다. 하지만 보험은 도덕적 해이에 취약하다는 약점이 있다. 사고 현장을, 손실 발생 현장을 즉시 확인할 수 없기에 보험 사기자는 ‘검은돈’을 편취하고 선량한 가입자는 그 부담을 대신 진다. 이런 현상은 욕망이 도덕을 압도하면서, 양극화가 심화되면서 빠르게 확대 재생산되고 있다.
미시적으로는 첫째, 악질적인 경성(hard) 보험사기 처벌은 더 엄격해야 한다. 화이트칼라 범죄에 관대한 한국의 사법시스템은 보험사기에도 무척 관대하다. 하지만 이는 보험사기는 ‘범죄도 아니다’ 또는 ‘적발돼도 괜찮다’라는 잘못된 인식을 심어준다. 또한 사전적으로 모의된 보험사기는 추가적인 제재가 필요하다. 보험사기 대응의 대표적 성공사례로 꼽히는 미국 매사추세츠 주의 예를 봐도 보험사기를 주도한 병의원에 면허 취소 등 강력한 조치를 해야 효과적이다. 둘째, 보험사기 적발체계 개선이 필요하다. 당장 국가 통합보험사기조사시스템을 가동하자. 이를 위해 수사를 담당하는 검찰과 경찰뿐만 아니라 보건복지부, 고용노동부, 금융감독원의 보험사기 정보를 유기적으로 연결하자. 특히 보험사기 적발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는 금융감독원과 건강보험 정보를 보유한 보건복지부의 적극적인 데이터 공유 없이는 진화하는 보험사기를 따라잡기 어렵다.
범죄 유인하는 보험상품 막아야
보험사기라는 동전의 뒷면은 소비자 보호다. 보험사기를 적발한다는 이유로 선의의 보험가입자를 ‘범죄자’로 몬다면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우는 격이다. 보험사기뿐 아니라 소비자 민원을 최소화하기 위해 관련 지표를 소비자, 보험회사, 정부가 공동으로 개발할 것을 제안한다. 성장 중심 경영전략 때문에 보험사기에 취약한 보험상품을 출시했다면 이는 보험회사 책임이 더 크다. 담장에 널어 둔 생선을 고양이가 물고 갔다면 고양이 탓인가 주인 탓인가. 검은돈의 욕망에 흔들리는 우리에게 보험사기 바이러스는 쉽게 침투한다. 전방위적인 바이러스 예방과 차단, 치료가 바로 시작돼야 한다.
김헌수 순천향대 금융보험학과 교수 아시아태평양보험학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