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판 엎고, 퉤!’ ★★★★
한끼 밥상 앞에서 우리는 얼마나 평등한가를 일깨우면서 그 밥상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고민하게 만드는 연극 ‘판 엎고, 퉤!’. 연희단거리패 제공
김지훈 작가의 연출 데뷔작이기도 한 이 작품은 전작들과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동굴우상을 패러디한 ‘방바닥…’의 주인공들은 골방에 틀어박혀 하루 19시간씩 잠을 자며 방바닥에서 등을 떼지 않으려는 ‘누룽지형 인간’이었다. 종족우상과 시장우상을 풍자한 ‘길바닥…’의 주인공들은 자연과 유리된 문명비판의 일환으로 아스팔트에 참기름을 바르는 반인반수(半人半獸)들이었다. 반면 극장우상을 겨냥한 ‘판 엎고, 퉤!’의 세 등장인물은 공연하려던 연극이 엎어진 뒤 썰렁한 무대를 찾은 여배우, 연출가 그리고 사채업자로 3부작 중 가장 사실적이다.
현란한 관념의 유희를 펼치던 장광설의 대사도 대폭 짧아졌다. 그 빈 자리를 침묵과 반복된 동작으로 채워 넣는다. ‘조명을 계속 받아야 목숨을 부지할 수 있는’ 여배우(김소희)는 무대 바닥에 엎어진 쌀알을 하나씩 집어 담는 일을 반복한다. 사채업자(윤종식)에게 쫓기는 신세가 된 연출가(윤정섭)는 그 쌀로 지어진 맨밥 한 공기를 꾸역꾸역 손으로 주워 먹는다.
전작과 닮은 점이 있다면 ‘먹을 것’을 놓고 등장인물들이 아귀다툼을 벌이는 것은 매한가지라는 점이다. ‘방바닥…’의 짜장면, ‘길바닥…’의 찐빵이 밥으로 바뀌었을 뿐. 연극에서 ‘밥/쌀’은 버텨내야 할 시간이자, 평생 벗어날 수 없는 감옥이자, 거부할 수 없기에 더욱 욕지기나는 현실이다. 세 명의 등장인물은 그런 밥의 소환에 대처하는 3가지 자세를 상징한다.
밥 짓는 법도 모르면서 ‘한 톨의 쌀’을 되뇌는 여배우는 아무리 더럽고 치사해도 견뎌낼 때 그 뭔가를 이뤄낼 수 있다고 믿는 인고의 실천자다. “네가 먹어야 할 밥이 너의 남은 징역이고 네가 씻어야 할 그릇이 도망칠 수 없는 쇠창살”이라고 독설을 퍼붓는 사채업자는 냉철한 실존론자다.
그렇다면 “밥이 감옥이라면 나는 밥을 다 먹은 뒤 밥상을 뒤엎겠다”며 실제 밥을 다 먹고 난 뒤 밥상을 엎고 침을 뱉는 연출가는 누구인가. 작가의 분신인 그는 작가가 꿈꾸는 이 시대 연극의 존재 이유를 표현한 행위예술가다. 허기로 상징되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 무릎을 꿇을지언정 마음으로 승복하진 않겠다는 자세다.
이것은 허위이고 위선인가. 아니다. 일찍이 재일교포 소설가 김달수가 소설 ‘박달의 재판’(1958)에서 형상화한 삶의 방식이다. 일자무식 머슴 박달은 일제가 만든 치안유지법에 저항하는 방식으로 붙잡히면 “잘못했다”고 싹싹 빌다가도 풀려나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 다시 저항운동을 펼친다. 그것은 지조를 목숨보다 중시한 조선의 양반이나 일본 사무라이의 전통적 윤리관을 밑바닥에서부터 뒤집는 방식이다.
그것은 또한 배고플 때 밥 먹고 지칠 때 잠을 자면서 인위적 윤리도덕에서 해방된 행복을 추구했던 고대 견유주의(cynicism)의 건강한 전통을 되살릴 것을 주창한 독일 철학자 페터 슬로터다이크의 사상과 일맥상통하는 점이 있다.
실제 이 연극에는 인간의 동물적 욕망을 긍정하는 유머감각이 도처에 깔려 있다. 고상한 예술을 논하던 사람들이 한 그릇의 밥과 몇만 원의 돈을 놓고 ‘생쇼’를 펼친다. 3부작을 연결시켜주는 연결고리다. 사채업자의 대사처럼 연극은 결코 밥이 되지 못하고 돈이 되지 못한다. 하지만 여배우의 말처럼 그것은 진한 유머로서 당신을 구원하리라.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i: 13일까지 1만5000∼3만 원. 02-763-12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