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운 일은 쉽고, 쉬운 일은 어렵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을 한 대학교수의 이름을 따서 ‘모라베크의 역설’이라고 불리기도 하는데, 인공지능 연구 분야에서 흔히 쓰이는 말입니다.
예를 들어 회계사와 미용사를 비교해보죠. 사회 통념으로는 회계사의 일이 미용사의 일보다 좀 더 고차원적이고 어려운 일입니다. 하지만 컴퓨터는 이미 회계 소프트웨어를 통해 회계사가 하는 일을 상당 부분 대신 합니다. 반면 아직도 머리를 멋지게 보이도록 다듬는 일은 못합니다. 인간에겐 단순하고 쉬운 일이 기계에겐 매우 어려운 일이라는 게 바로 모라베크의 역설입니다.
이 얘기를 꺼낸 건 최근 읽고 있는 ‘기계와의 경주(Race against the Machine)’라는 책 때문입니다. 이 책의 주장은 좀 과격합니다. 정보기술(IT)의 발전이 우리의 일자리를 빼앗는다는 겁니다. 예전에도 기술이 발전하면 많은 사람이 일자리를 잃곤 했습니다. 하지만 이는 곧 생산성 향상으로 이어져 대규모 성장을 가져왔고 이는 다시 투자와 고용으로 이어져 실직자를 흡수했습니다. 반면 최근 IT 발전은 지나치게 빨라서 이런 과정이 일어나기 전에 더 많은 일자리를 빼앗는다는 겁니다. 한때 우리 모두를 잘살게 해줄 거라고 생각해 끊임없이 촉진해 왔던 기술 혁신이 오히려 우리의 일자리를 빼앗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지금까지 기계는 사람이 하기 싫어하는 단순 반복 작업을 대신 하며 발전했습니다. 하지만 최근 들어 기계는 점점 더 어려운 인간의 일을 대신합니다. 예를 들어 IBM이 만든 인공지능 컴퓨터 ‘왓슨’은 이미 의사를 대신해 병을 진단하기 시작했고, 구글은 운전자 없이도 스스로 운행하는 차량을 만들었습니다. 법률 서류를 대신 읽고 판례를 분석하는 기술도 나왔고, 트위터와 페이스북을 읽어가며 기업의 마케팅 전략을 대신 세워주는 소프트웨어까지 개발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사람이 기계와 경주를 벌여 이기려면 기계가 잘 못하는 분야를 골라야 한다는 게 이 책의 주장입니다. 모라베크의 역설에서 드러나듯 맛을 보고, 아름다움을 느끼고, 취향을 만들어내는 일은 기계가 아직 쉽게 하지 못하는 일이란 거죠. 하지만 이런 직업이 생겨나는 것보다 우리의 일이 기계에 의해 대치되는 속도가 더 빠릅니다. 결국 장기적으로는 이렇게 향상된 생산성의 과실이 다시 우리 모두에게 분배돼 풍요로 돌아오겠지만 그때까지 우리는 기계와 달리기 경기를 해야 합니다. 불행하지만 그게 이 시대의 현실일지 모릅니다.
김상훈 기자 sanh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