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자룡 국제부 차장
청나라 황실의 정원이었던 베이징(北京)의 위안밍위안(圓明園)은 1860년과 1900년 두 차례에 걸쳐 영국 프랑스 등의 군대에 의해 불타고 12지신상 등 문화재는 철저히 약탈당했다. 일부가 아직 폐허로 보존되고 있으며 이곳을 지나는 지하철 4호선 위안밍위안역 지하 역사에는 당시의 치욕을 잊지 말자며 침탈의 역사를 동판에 자세히 새겨 놓았다.
1957년 11월 18일 러시아 10월혁명 40주년 기념식에 참가하기 위해 러시아를 방문한 마오쩌둥(毛澤東)은 연설에서 “국제정세는 새로운 전환점을 맞았다…형세는 동풍이 서풍을 제압하고 있다”며 자신감을 나타냈다. 하지만 중국은 그 후 대약진과 문화대혁명 등의 파란을 겪다 1978년 개혁 개방 이후에야 도약의 발판을 마련했다.
이튿날인 지난달 28일 클라우스 레글링 EFSF 최고경영자(CEO)는 베이징으로 날아갔다. 관영 신화통신은 레글링이 오기 전날 “유럽은 위기에 책임을 져야 하며 ‘착한 사마리아인’에게 의존하려 해서는 안 된다”고 따끔한 충고를 날렸다. 그 후 중국 지도자들의 발언은 유럽의 애를 태우면서 한편으로는 속내를 드러냈다.
후 주석은 지난달 31일 하인츠 피셔 오스트리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후 “유럽은 현재의 어려움을 극복할 지혜와 능력을 갖고 있다고 확신한다”며 지원을 고대하는 유럽에 딴청을 피웠다. 이어 신화통신은 1일 “중국이 유럽을 도우면 호혜 차원에서 중국에 시장경제지위 인정 조치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자 서구 언론이 중국에 원조를 요청하는 것에 대한 반론을 잇달아 내놓았다. 파이낸셜타임스와 월스트리트저널은 “차이나머니로 유럽 위기를 해소하려는 것은 유로를 중국에 저당잡히는 것” “유럽의 재정적자는 자체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로 유럽의 운명을 중국에 맡기는 것은 정치적으로 현명하지 않다”고 반박했다. 미 뉴욕타임스도 “잘사는 EU가 중국의 자선을 기대하는 것은 보기에도 맞지 않고 좋은 정책도 아니다. 큰 대가를 치를 것”이라고 지적했다. 중국이 금융 지원을 지렛대로 평가 절하된 위안화나 심각한 인권상황에 대한 비판을 잠재우려 할 것이 뻔하다는 것이다. 서구는 중국에 손 벌리며 이처럼 복잡한 심사를 드러내고 있다.
서풍을 제압하려는 마오 자신의 꿈이 사회주의가 아닌 금력(金力)으로 혁명 60여 년 만에 이뤄지고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