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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쇄신파의 MB사과 요구 귀기울여 들어야”

입력 | 2011-11-09 03:00:00

“공천 물갈이? 순서 잘못됐다”… 靑과 충돌 가능성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8일 당내 소장·쇄신파 의원 25명이 최근 공개적으로 이명박 대통령에게 대국민 사과와 정책노선 변경을 요구한 것에 대해 “(쇄신파의) 그 얘기도 귀 기울여 들을 얘기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박 전 대표는 이날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열린 한나라당 김영선 의원의 출판기념회에 참석하는 길에 기자들과 만나 이렇게 답변했다.

그러나 당 일각에서 제기되는 공천개혁을 통한 ‘물갈이’ 주장에 대해선 “순서가 잘못됐다”며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이는 청와대를 겨냥하고 있는 쇄신파의 움직임에 일부 힘을 실어주면서도 김문수 경기도지사와 정몽준 전 대표 등이 최근 강연과 언론인터뷰에서 한목소리로 물갈이를 주장하는 데 대해선 선을 그은 것이다.

10·26 재·보궐선거 이후 불거진 여권의 쇄신 논란에 대해 박 전 대표가 이처럼 명확한 태도를 보인 것은 처음이다. 박 전 대표는 “개혁의 방향은 국민 삶에 직접 다가가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며 “쇄신을 하는 이유도 국민 삶의 문제를 잘 (해결)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 아니겠느냐. 국민의 삶이 어려운 시기에 개혁 방향을 잘 잡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등록금 부담을 어떻게 완화할지, 사회보험료 지원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 노인 빈곤과 비정규직의 아픔을 어떻게 덜어줄지 등에 대해 국민으로부터 진정성을 인정받은 바탕 위에서 개혁·쇄신 논의를 해야 한다”며 “이것이 전제되지 않은 상황에서 정치개혁이 어떻고 하는 것은 국민이 들을 때 허망하고 기득권 싸움으로 비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나름의 쇄신·개혁 방안을 제시한 것이다.
이날 박 전 대표의 발언을 놓고 당 안팎에선 “박 전 대표가 청와대와의 차별화까지 각오하며 적극적으로 전면에 나서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특히 쇄신파의 청와대 사과 요구에 ‘귀 기울여 들을 얘기’라는 반응을 보인 것에 대해 친박(친박근혜)계 인사는 “박 전 대표가 대통령을 일부러 비난하지는 않겠지만 앞으로 문제가 있는 부분은 문제가 있다고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 전 대표의 발언에 대해 청와대는 “우리는 모든 고언(苦言)에 귀를 기울이겠다. 여권 쇄신은 (청와대와 박 전 대표 등) 국정을 책임진 우리 모두가 고민할 문제”라고 반응했다. 이틀 전 쇄신파 25인이 이 대통령에게 대통령 사과 등 요구사항을 서한에 담아 전달했을 때 내놓았던 반응과 동일한 것으로 이 사안이 확대되는 것을 차단하려는 시도로 풀이된다. 한 고위 관계자는 “여권 내부에 민심을 담은 변화가 필요하다는 취지의 원론적인 발언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물갈이 공천에 대한 박 전 대표의 언급에도 불구하고 당 부설 여의도연구소에서 작성한 것으로 알려진 보고서 문건이 이날 언론에 공개되면서 물갈이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특히 이 문건에는 ‘대대적인 외부인사 영입으로 불리한 선거환경을 극복해낸 15대 총선과 고령 의원 20여 명이 자진 출마포기 선언 등의 쇄신으로 기사회생한 17대 총선을 벤치마킹해야 한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어 파장이 커졌다. 쇄신파의 핵심인 정두언 의원이 여연 소장이어서 당내 일부 중진 사이에선 “이 보고서 유출에 ‘정치적 의도’가 있다”는 반발이 뒤따랐다.

쇄신파는 최대 현안인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만 국회에서 처리되면 다시 당 지도부와 청와대를 겨냥해 쇄신 압박을 할 태세다. 정 의원은 이르면 이번 주에 여연 소장 직을 던지겠다는 뜻을 주변에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4명의 여연 부소장 중 한 명인 권영진 의원도 이미 부소장에서 물러나겠다는 뜻을 밝혀 여론조사와 정책개발을 하는 당의 싱크탱크인 여연이 당직 사퇴의 진원지가 됐다. 쇄신파 일각에선 “요구가 관철될 때까지 단식 농성을 하자” “대통령 면담을 신청하고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청와대 앞에서 1인 시위를 하자”는 과격한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김기현 기자 kimkihy@donga.com  
홍수영 기자 gaea@donga.com